[영월 청령포와 장릉]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유배지와 능

2023. 1. 4. 21:53+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문화유산 답사기

2023.01.01

 

 

청령포

국가지정 명승 제50호

 

 

 

새해 아침 별마로 천문대에서 해돋이를 보고 청령포로 이동했다.
주차장에서 사진의 시설물이 있는 곳으로 가면 매표소가 나온다.

* 주차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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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별마로 천문대] 2023 새해 첫 해돋이

2023.01.01 일상생활이 180도로 변할만큼 숨쉬기 조차 힘들었던 한 해가 지나고 드디어 계묘년의 새아침이 열렸다. 희망찬 새출발을 위해 새해 첫날 해돋이 보러 출발!! 동해나 강릉까지는 너무 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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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정 명승 제50호인 청령포는 입장료가 있다.

* 매표시간 : 09:00 ~ 17:00
* 입장료 : 어른3,000원, 청소년2,500원, 어린이2,000원, 경로1,000원
* 반려동물 입장 불가
* 연중 무휴

 

 

 

청령포는 어린 나이에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유배지로 서쪽은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고, 삼면이 서강에 둘러싸여 마치 섬과 같은 형상이다.

 

 

 

 

청령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 하는데, 배가 얼음에 갖혀 있다.

 

 

 

두껍게 얼은 얼음에는 눈이 그대로 쌓여있고, 이미 먼저 입장한 사람들의 발자국이 있어 나도 그리로 건너가는 중이다.
배는 엔진을 풀가동하여 앞뒤로 움직이며 빠져 나오려 애쓰고 있는 모습이다.

 

 

 

청령포를 둘러싼 서강이 꽁꽁 얼어버렸다.

 

 

 

섬(?)에 들어서니 돌탑들이 길을 안내해 준다.

 

 

 

청령포의 울창한 송림으로 들어간다.

 

 

 

청령포 숲은 2004년 '제5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우수상)을 수상한 곳이라고 한다.

 

 

 

조선왕조 제6대 임금인 단종이 1457년에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처음으로 유배되었던 곳이라는 안내가 적혀 있다.

 

 

 

햇살이 비추는 소나무 숲을 지나 단종어소를 먼저 들려 본다.

 

 

 

단종어소

단종이 거처하던 곳에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라 겹처마 팔작지붕 형식의 기와집을 복원하였고, 부속 건물인 초가집을 건립하였다.

 

 

 

단종을 알현하듯 담장 밖에서 어소를 향해 허리가 굽은 노송.

 

 

 

단종어소와 단묘재본부시유지비각이 낮은 담장안에 위치해 있다.

 

 

 

단묘재본부시유지비

이 비는 1457년 6월22일 조선왕조 제6대 임금인 단종이 왕위를 찬탈 당하고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유배되었던 거처가 있었다는 사실을 전하고자 영조 39년에 이 비를 세웠다.
단종의 거처인 어소는 두달 동안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그 해 여름에 홍수로 청령포가 범람하며 소실되자 이 비를 세워 어소 위치를 전하고 있다.

 

 

 

 

 

단종과 단종을 알현하는 선비의 모습이 밀랍인형으로 재현되어 있다.

 

 

 

삼면이 서강에 휩싸인 청령포의 모습처럼 단종어소 또한 우람한 송림에 둘러싸여 있다.

 

 

 

행랑채

단종어소 좌측에는 궁녀와 관노들이 기거하던 행랑채가 초가집으로 재현되어 있다.

 

 

 

바느질을 하고 있는 침모의 모습

 

 

 

아름다운 숲이라는 명칭을 붙일만 하다.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두절된 유배생활을 하였을 어린 단종의 모습이 상상된다.

 

 

 

당시에는 이곳에 거처할 수 있는 집이 있어 호장 엄흥도는 남몰래 밤이면 이곳을 찾아 문안을 드렸다고 전한다.

 

 

 

 

 

그때 단종의 마음도 이렇게 평온했을까,,

 

 

 

영월 청령포 관음송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되어 있는 관음송은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때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어서 수령은 약 6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단종의 유배 당시 모습을 보았으며, 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뜻에서 관음송이라 불리어 왔다.

 

 

 

망향탑 가는 길

 

 

 

망향탑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때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수 없는 근심 속에서도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막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는 탑으로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다.

 

 

 

청령포 뒷산 육육봉과 노산대 사이 층암절벽 위에 있으며, 그 당시 어린 단종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탑이다.

 

 

 

망향탑을 지나 육육봉을 바라볼 수 있는 데크길을 따라 올라가본다.

 

 

 

육육봉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 싸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접근할 수 없었던 곳이다.

 

 

 

노산대

육육봉에서 바라본 노산대의 모습

 

 

 

청령포에서는 주기적으로 기적소리를 들을 수 있다.
서강 옆으로 기차가 지나가며 기적소리를 내는데, 마치 어린 단종의 적적함을 달래주기라도 하는듯 느껴진다.

 

 

 

노산대까지는 위험구간이라 출입이 통제되어 있어 올라가보지는 못했다.

 

 

 

금표비

금표비는 단종이 유배되어 있던 이곳에 일반 백성들의 출입과 행동을 제한하기 위하여 영조 2년(1726)에 세운 비석이다.

 

 

 

홍수로 인한 청령포 범람 후 영월읍 영흥리에 있는 관풍헌으로 옮겨 유배 생활을 이어갔다고 한다.

 

 

 

천천히 둘러 보아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선착장으로 나가는 길, 어소에서 어린 단종이 뛰어나오기라도 할것 같은 기분이다.

 

 

 

나가는 길에 배가 건너편에서 오기를 기다리며 돌탑도 담아보고,

 

 

 

쇄빙선마냥 깨진 얼음을 헤치고 배가 도착했다.
출발, 도착시간은 따로 없고, 관람객이 있으면 수시로 왔다갔다 한다.

 

 

 

관람객 몇명을 내려주고, 다시 나를 태우고 건너편으로 간다.

 

 

 

얼음을 헤치고 나가기가 버거운듯 엔젠소리가 엄청 요란하다.

 

 

 

청령포를 떠나는 순간,

 

 

 

두터운 얼음 조각들이 둥실둥실 나를 배웅해 준다.

 

 

 

나를 내려준 배는 다시 관람객 두명을 태우고 섬이 아닌 섬, 단종 유배지를 향해 과거속으로 다가간다.

 

 

 

영월 장릉

세계유산 조선왕릉

 

 

 

청령포에서 장릉 주차장까지는 2.5km 거리로 금새 도착하게 된다.

* 주차 무료

 

 

 

 

영월 장릉은 세계유산이자 사적 제196호로 지정되어 있다.

 

 

 

관광안내소

관광안내소 옆 매표소에서 매표후 입장할 수 있다.
오늘 1월1일은 제향을 올리는 날이라 오전에는 무료 입장이라고 한다.

* 관람료 : 어른2,000원, 청소년1,500원, 어린이1,000원, 경로 무료
* 매표시간 : 09:00 ~ 17:30

 

 

 

장릉 안내도

가이드북의 장릉 안내도를 살펴보면, 입구에서 단종역사관 옆 능 올라가는 길로 단종릉을 먼저 본후 내려와 나오면서 차례대로 들려볼 예정이다.

 

 

 

단종역사관과 정자각으로 가는 길

 

 

 

왕릉 가는 길로 올라간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름길에 소나무가 울창하니 걷기에 좋은 길이다.

 

 

 

 

 

10분이면 단종릉에 도착하게 된다.
기존에 보았던 드넓은 잔디밭에 있는 왕릉과는 달리 산 능선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단종릉

단종은 제5대 문종의 아들로 1452년 문종이 재위 2년4개월 만에 승하하니 12세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어머니 현덕왕후는 단종의 출산 후유증으로 출산 후 하루 만에 승하하였고, 단종의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세조)이 계유정난(1453)으로 권력을 잡자 1455년 세조에게 왕위를 선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이듬해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등 사육신이 시도한 단종 복위 운동은 실패로 돌아갔고, 1457년(세조3년)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다.
그 해 여름 장마에 잠길 우려가 있어 객사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영월 유배 4개월만인 음력 10월24일에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17세의 일기로 승하 하였다.

 

 

 

봉분 좌우에 세우는 기둥인 망주석에는 동물의 형상 등을 조각하는 세호가 있는데, 조선 왕릉중 유일하게 영월 장릉의 망주석에는 세호가 없다고 한다.

 

 

 

능 내려가는 길로 가면 언덕 아래 정자각과 이어진다.

 

 

 

홍살문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홍살문은 붉은 칠을 한 2개의 기둥을 세우고 위에는 살을 박아 놓았다.

 

 

 

신도

왼쪽 높은 길은 신이 다니는 길로 보행을 삼가해 달라는 안내문이 있다.
오른쪽 낮은 길은 임금이 다니는 어로라고 한다. 보행자는 이 길로 다닐수 있다고 하는데 그냥 잔디를 밟고 걸어갔다.
신도는 오른쪽으로 꺾이며 정자각으로 이어진다.

 

 

 

정자각

단종대왕 제향시 제물을 올리는 정(丁)자 모양의 제전으로, 제향을 올릴때 왕의 신주를 이곳에 모신다.

 

 

 

숙종 25년(1699)에 건립하였으며 정자각 또는 배위청이라 한다.

 

 

 

정자각 뒤 언덕 위에 능의 모습이 보이고,

 

 

 

이미 제향을 올리는 행사가 끝난듯 제물이 치워지고 있었다.

 

 

 

단종비각

정자각 우측에 단종비각이 있다. 영조 9년(1733)에 어명으로 단종대왕릉비와 비각이 건립되었다.

 

 

 

비석 앞면에는 "조선국단종대왕장릉" 이라는 글이 음각되어 있고, 뒷면에는 단종대왕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정자각과 단종비각, 수복실의 모습
바로 앞의 수복실은 능과 경내를 관리하는 능지기가 거처하던 곳이라 한다.

 

 

 

장판옥

정조 15년(1791)에 건립한 건물로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신위 32인, 조사위 186인, 환자군노 44인, 여인위 6인을 합하여 268인의 위패를 모셔놓은 곳이다.

 

 

 

엄흥도 정려각

이 비각은 엄흥도의 충절을 후세에 알리기 위하여 영조 2년(1726)에 세운 것이다.
충신 엄흥도가 영월호장으로 있을때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 유배되어 관풍헌에서 1457년 10월24일 조정에서 내려진 사약을 받고 승하하여 그 옥체가 강물에 버려지자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 단종의 시신을 암장하여 충신으로 추앙 받고 있다.

 

 

 

재실

능 제사와 관련한 전반적인 준비를 하는 곳으로 왕릉을 관리하던 능참봉이 기거하였다.

 

 

 

이 건물의 처음 건립연대는 숙종 25년(1699)이고, 1932년에 중건하였다.

 

 

 

이곳에는 능을 지키는 참봉 1인관 수호군 9인이 기거하였으며, 매년 단종제향을 지낼때 이곳에서 제물을 준비하고 제기를 비롯한 각종 사용 기구를 보관해 오던 곳이다.

 

 

 

단종역사관

단종 관련 유적 및 유품을 한눈에 볼수 있는 곳으로,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의 생애와 사육신의 충절을 되새기기 위해 세운 전시관이다.

 

 

 

 

 

1층은 주제별로 전시실이 마련되어 단종의 세자 즉위에서부터 단종대왕으로 복권되기까지의 일대기를 차근차근 볼수 있다.

 

 

 

문종실록

 

 

 

정순왕후 금보

정순왕후는 단종이 노산군으로 유배될 때 함께 부인으로 강봉되었다가 1698년 왕비로 복위되자 제작한 어보.

단종 금보

단종이 승하한 해에는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어보를 제작하지 않았으나, 1698년 단종이 복위되자 시호를 올리고 제작한 어보.

 

 

 

세종실록

 

 

 

 

 

육선생유고

1456년 단종 복위에 목숨을 바친 사육신인 박팽년, 성삼문,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의 시문집을 모아 간행한 책.

 

 

 

성근보집

사육신의 성삼문 시문집.

 

 

 

세조실록

 

 

 

 

 

단종사적

단종 폐위 후 노산대군 추봉을 비롯해 단종 복위 등의 사실을 편년체로 엮은 역사서.

 

 

 

1층 관람을 마치고 지하층으로 내려가면 특별전시실과 단종유배길, 단종문화제에 관한 자료, 세자의 궁중생활을 엿볼수 있는 자료들을 둘러볼수 있다.
지하층은 사진 촬영금지여서 눈으로만 담아 왔다.

 

 

 

단종 영정

곤룡포에 익선관을 쓰고 백마를 탄 단종에게 산머루를 바치는 충신 추익환의 모습 (김기창 작)

가이드북에 단종 영정으로 나와있는 이 그림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볼수 있다.
최근 2021년 4월에 정부는 단종의 어진을 새롭게 그려 표준 영정으로 지정했다고 하는데, 상상의 초상화를 표준으로 지정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박충원 낙촌비각

이 비각은 박충원의 충신 됨을 후세에 알리기 위하여 1973년에 세운 것이다.

 

 

 

영월군수이던 낙촌 박충원이 노산묘를 찾은 일에 대한 사연을 기록한 기적비이다.

 

 

 

12세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고, 작은아버지의 사약을 받아 17세에 승하한 비운의 왕, 단종
1516년(중종11)에 장릉은 비로소 왕릉의 모습을 갖출수 있었고, 1698년(숙종24) 묘호를 단종, 능호를 장릉이라 하였다.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언제나 좋은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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