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길상사] 법정스님 진영각과 공덕주 길상화 사당

2021. 9. 20. 00:06+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문화유산 답사기

[서울 성북동 길상사]
법정스님 진영각과 공덕주 길상화 보살의 사당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 성북동

Photographed by BayZer™

2021.09.18

 

 

 

길상사 정문에서 언덕을 올라가면 무료 주차장이 있다.
아침 6:30분쯤, 이 시각에는 주차하기가 수월하다.

 

 

 

길상사 입구
출입명부 작성후 입장하면 된다.

* 입장료 : 없음

 

 

 

길상사 조감도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

 

 

 

설법전과 관세음보살상

설법전
길을 따라 올라가면 제일 먼저 설법전과 마주하게 된다.
설법전 앞에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관세음보살상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 조각가가 제작한 조각품으로, 법정스님의 종교 간 화합을 염원하는 마음이 담긴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성모 마리아와 비슷한 분위기의 온화함이 보인다.

 

 

 

관세음보살상 앞에 작은 소망들이 쌓여있다.

 

 

 

길상사는 이맘때면 꽃무릇으로 유명세를 치르는 곳이다.

 

 

 

꽃무릇이 피었다는 소식에 갈까말까 망설이다 아침 일찍 다녀오긴 했는데, 이미 시들고 져버린 시점.
꽃무릇은 1주일 정도 피었다가 진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꽃이나 새는 자기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저마다 자기 특성을 마음껏 드러내면서 우주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삶에 충실할때
그런 자기 자신과 함께 순수하게 존재할 수 있다.
- 법정 스님

 

 

 

그나마 아직 시들지 않은것을 찾아 몇컷 담아보긴 했지만 삼각대가 없어 날린 사진들이 더 많았다.

 

 

 

경내에 해가 늦게 들어 철수하려는 시점에 찍었던 사진들만 몇장 쓸수 있는 정도~

 

 

 

길상7층보탑

조선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길상7층보탑은 네마리의 암수 사자가 기둥 역할을 하며, 4사자 가운데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인이 모셔져 있다.

 

 

 

이 탑은 영안모자 백성학이 법정스님과 길상화 보살님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 종교화합의 의미를 전하고자 무상으로 기증했다고 한다.
이후 미얀마의 제1보궁 우뚜리와 완사 큰스님이 1,600년전 고탑 해체 과정에서 직접 출토한 부처님 오색정골사리, 구강사리, 응혈사리와 제자인 목건련존자, 마하가섭존자, 라훌라존자 등의 사리를 2013년 5월25일 탑신부에 봉안하였다.

 

 

 

극락전

길상사는 본래 사찰 이전에 고급 요정이었던 '대원각'이었다.
요정의 주인이었던 공덕주 길상화 (본명 김영한, 1916~1999)이 법정스님에게 대원각을 시주하여 사찰로 달바꿈하게 된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사찰이다.

 

 

 

1955년 바위 사이 골짜기 맑은 물이 흐르는 성북동 배밭골을 사들여 대원각이라는 요정을 운영하던 그녀는 1987년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아,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회향을 생각하고 7천여 평의 대원각 터와 40여 동의 건물을 절로 만들어주기를 청하였다.

 

 

 

법정스님은 10년 가까이 이 부탁을 간곡히 사양했으나 끝내 부탁을 받아들여 송광사의 말사인 '대법사'로 등록하여 처음 사찰이 되었다.
초대 주지로 취임하고 1997년에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이라는 길상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극락전 내에는 아미타부처를 봉안하고 좌우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사하고 있다.

 

 

 

극락전 좌측 화단에는 수양회화나무 아래 동자승을 볼수 있다.

 

 

 

범종각

극락전 앞에서 바라본 범종각

 

 

 

법정스님의 유골이 모셔져 있는 진영각으로 가기 위해 범종각 옆으로 올라간다.

 

 

 

우리들은 말을 안해서 후회되는 일보다도
말을 해 버렸기 때문에 후회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 법정 스님

 

 

 

맑고 향기롭게

맑고 향기롭게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우리의 마음과 세상과 자연을 본래 모습 그대로, 맑고 향기롭게 가꾸며 살아가기 위한 활동과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고 자연을 보존,보호하는 일 등, 뜻을 함께하는 이라면 누구나 참여할수 있는 순수 시민모임이다.

 

 

 

송월각
신비스러운 모습의 문 앞에서 시간이 멈춘듯 잠시 서있었다.

 

먼저 살다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하나같이 인생은 짧다고 한다.
어물어물하고 있을때
인생은 곧 끝나버린다는 것.
후딱 지나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곧 끝나버렸다는 말이다.
- 법정 스님

 

 

 

경내 곳곳에는 방갈로 비슷한 별채들 많다.
요정이었던 대원각 운영 당시 소규모 손님들의 연회 장소였으나 현재는 스님들의 수행공간이나 스님 처소로 사용되고 있다.

 

 

 

길상선원

길상선원 입구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이런 순간들이 쌓여
한 생애를 이룬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라.
묵은 수행에서 거듭거듭 털고 일어서라
- 법정 스님

 

 

 

참선 수행 공간인 길상선원,
발걸음을 옮기기도 조심스러운 곳이다.

 

 

 

길상선원 앞 석탑

 

 

 

법정스님 진영각 입구 대나무숲

 

 

 

법정스님 진영각

경내에서 제일 끄트머리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진영각은 법정스님의 유골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법정스님 유골 모신 곳

 

 

 

잘 다듬어진 단이 있는것도 아니다.
자연 그대로의 한쪽 마당 낮은 담장아래 법정스님은 무소유를 실천하시듯 소박하게 모셔져 있다.

 

 

 

진영각
법정스님이 생전에 머물던 곳.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지 않은 것을 버리라'는 뜻의 무소유를 역설해온 법정스님의 유물관이다.

 

 

 

법정 스님 (1932~2010)

전라남도 해남 출생.
한국전쟁의 비극을 경험하고 인간의 선의지와 진리의 길을 찾아 1956년 효봉 학눌의 문하로 출가하여 수행자의 기초를 다진후,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대교과를 졸업하고 쌍계사, 해인사, 송광사 등 선원에서 수선안거 했다.
1960년부터 1970년대 초가지 불교사전 편찬, 불교경전 역경에 헌신하였으며, 1975년 송광산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수행했다.
하지만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자 1992년 아무도 거처를 모르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홀로 청빈과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였다.
1994년 시밈모임 "맑고 향기롭게"를 창립하여 이끌어 주었고, 무소유 사상에 감동한 김영한 여사가 성북동의 대원각을 무주상 보시하여 1997년 길상사를 창건하였다.
2010년 3월11일 법랍 55세, 세수 78세로 길상사 행지실에서 입적하였다.
저서 및 역서로는 <무소유>, <버리고 떠나기>, <물소리 바람소리>, <화엄경>, <숫타니파타> 등이 있다.

 

 

 

진영각 통나무 의자

진영각 툇마루 옆에는 법정 스님이 생전에 사용하시던 통나무 의자가 있다.
이 의자는 법정 스님이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면서 아무도 모르는 강원도 산골 화전민이 살던 오두막을 빌려 거처를 옮기고 홀로 청빈과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시며 직접 만든 의자라고 한다.
다소 투박해 보이는 의자는 이제 가을꽃 화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진영각 내부
법정 스님의 영정과 유품, 승복이 전시되어 있어 누구나 들어가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올릴수 있다.

 

 

 

길상사 지장전 상량문

시절인연의 덕으로 이 절이 문을 연지 어느덧 일곱해가 되었다.
그 전에 세워진 낡은 집들을 고쳐 크고 작은 불전과 은사로 쓰이고 있다.
절실한 필은에 따라 사부대중이 함께 원을 세워 무너져가는 집을 헐어내고 이 터에 지장전과 도서관 그리고 식당인 선열당을 짓고자 오늘 보를 올리는 행사를 갖는다.
이 불사에 동참한 불자들은 모든 중생을 남김없이 다 성불케 하리라는 지장보살의 큰 자비와 힘을 입어 이 집을 드나들 때마다 자기 자신이 오늘 이 땅의 지장보살 화신임을 새롭게 다져서 안팎으로 불자의 소임을 두루 향하기 바란다.

 

 

 

법정 스님의 유품들

 

 

 

진영각 툇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앞뜰의 모습
낮은 담장아래 소담스런 화단을 만들었고 담장 너머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사람을 대신해서 살아줄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 답게 살고 싶다.
- 법정 스님

 

 

 

살아있는 것은 끝없이 변하면서
거듭거듭 형성되어 간다.
봄이 가고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그와 같이 순환한다.
그것은 살아있는 우주의 호흡이며 율동이다.
지나가는 세월을 아쉬워할게 아니라
오는 세월을 잘 쓸줄 아는
삶의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 법정 스님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 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은 어디 있는가
모두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 법정 스님

 

 

 

담장 한켠에 피어있는 꽃무릇

 

 

 

진영각 아래에는 아직도 꽃무릇이 한창이다.
촬영시간 07:28과 08:45,, 색감차이가 많이 난다.

 

 

 

 

 

 

적묵당

여느 사찰의 전각들과는 확실한 차이를 보이는 건물이다.
요정으로 사용되던 당시의 유리문도 그대로 사용되었고, 기와로 쌓아놓은 담장은 인상적이다.
담장 앞에 피어있는 몇송이의 꽃무릇은 많은 사진가들에게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세상은 먼곳에 있지 않다.
바로 우리 곁에 있다.
우리가 볼줄 몰라서 가까이하지 않기 때문에
이 아름다운 세상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이렇게 마음껏 꽃을 피우는데,
과연 자연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떤 꽃을 피우고 있는지 거듭거듭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꽃에게서 들으라...
- 법정 스님

 

 

 

 

 

 

공덕주 길상화 사당

공덕주 길상화 (본명 김영한, 1916~1999)
1916년 민족사의 암흑기에 태어나 16세의 나이로 금하 하규일의 문하에서 진향이라는 이름을 받아 기생으로 입문하였다.
1955년 성북동 배밭골에 대원각이라는 요정을 지어 운영하던 그녀는 1987년 7천여 평의 대원각 터와 건물들을 절로 만들어주기를 법정 스님에게 10년동안이나 간청한 인물이다.

 

 

 

1997년 12월14일 대원각이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창건되는 아름다운 법석에서 김영한은 법정스님으로부터 염주 한벌과 길상화라는 불명을 받았다.

"나 죽으면 화장해서 눈이 많이 내리는 날 길상헌 뒤뜰에 뿌려 주시오"
- 길상화 보살의 유언

 

 

 

시주 길상화 공덕비
1999년 11월14일 길상화는 육신의 옷을 벗었다.
다비후 그녀의 유골은 49재를 지내고 첫눈이 온 도량을 순백으로 장엄하던 날 유언에 따라 길상헌 뒤쪽 언덕바지에 뿌려졌으며, 무주상보시의 귀한 뜻을 오래도록 기리고자 2001년 11월21일 이 자리에 공덕비를 세웠다.

 

 

 

1937년 천재시인 백석으로부터 자야(子夜)라는 아명으로 불리었던 길상화 보살
사당 앞에서 백석이 쓴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라는 글을 읽어볼수 있다.

 

 

 

길상화 보살상

길상화 사당으로 건너가는 다리위에서 볼수 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아,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회향을 생각하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시주하게 되었다는 길상화 보살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나니
오직 분별하는 것을 꺼릴 뿐이라.
사랑하고 미워하지 않으면
툭트여 명백하리라.

 

 

 

길상화 보살의 가장 아름답고 평온한 미소를 볼수있다.

 

 

 

침묵의 집

침묵의 집 안에는 누구나 들어가 명상을 할수 있는 열린 공간의 작은 방이 있다.
다른 사찰에서는 볼수없는 특별한 공간이지만 현재는 코로나 시국이라 경험해보지 못한다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숲에는 질서와 휴식이, 그리고 고요의 평화가 있다.
숲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안개와 구름, 달빛과 햇살을 받아들이고,
새와 짐승들에게는 깃들일 보금자리를 베풀어 준다.
숲은 거부하지 않는다.
자신을 할퀴는 폭풍우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 법정 스님

 

 

 

수령 265년된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나무 높이는 12m, 둘레는 3.2m라고 한다. 경내에는 이런 아름드리 나무가 많다.

 

 

 

단풍에 햇살이 잔뜩 묻었다.
이제야 충분한 셔터스피드가 확보되고 찍을만했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이른 아침때보다 더 많아졌다는 거다.

 

 

 

꽃무릇만 생각하고 찾아온 길상사라, 다시 한바퀴 돌며 제대로 담아볼까도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법정 스님의 흔적과 길상사의 흥미로운 이야기 만으로도 여기까지 온 보람이 없지는 않다 생각하니 여기서 발길을 돌리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무소유까지는 아니더라도 욕심은 부리지 말자~~^^

 

우리들의 소유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뜬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이 떠나갈 것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 법정 스님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