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 정족산 사고와 성돌이길의 풍경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35

31 Photos

2013.05.17

ⓒWonHaeng.com, Photographed by BayZer™

 

 

 

 

 

정족산 사고 앞뜰에 작은 돌탑들이 쌓여있다.

 

 

 

 

 

숙종 때인 1678년, 조선왕조실록을 전등사에 보관하기 시작하면서 전등사는 왕실종찰로서 더욱 성장했다.
본래 왕실에서는 실록을 4부씩 만들어 궁궐 내의 춘추관과 충주, 성주, 전주 등 네 군데의 사고(史庫)에 보관하도록 했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고 전주 사고만 무사했다. 이때 전주 사고본이 보존된 것만 해도 우리 역사에서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조정에서는 임진왜란 후 전주 사고본을 4부씩 옮겨 적게 하여 전주 사고본은 강화도 전등사로 옮겼고, 다른 실록은 봉화군 태백산, 영변 묘향산, 평창 오대산에 각각 보관하게 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국토가 강점되면서 정족산 사고본은 태백산사고의 실록 및 규장각의 도서와 함께 조선총독부 학무과 분실에 이장 되었다가 1930년 경성제국대학으로 옮겨진 후 광복과 함께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되어 오고 있다.

 

 

 

 

 

본래의 정족산 사고는 1931년 무렵 주춧돌과 계단석만 남긴 채 파손되어 빈터만 남아 있던것을, 전등사에 보존되어 오던 ‘장사각’과 ‘선원보각’이라는 당시의 현판과 함께 1999년 복원되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사고 주변에는 노송들이 오랜 세월을 지키고 서있다.

 

 

 

 

 

 

 

 

 

 

 

 

 

 

 

 

 

 

 

 

 

 

 

 

 

사고 뒷편 정족산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성돌이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왼쪽 방향으로 가면 남문까지 이어지고 오른쪽 방향은 달맞이고개가 나온다.

 

 

 

 

 

정족산 정상 부근에서 전등사의 전경을 보기위해 일단 서문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오르다보면 서문은 이용되지 않아 언제 지났는지 알수도 없이 정상까지 오르게 된다.

 

 

 

 

 

 

 

 

 

 

구름이 너무 멋진 하늘이다.

 

 

 

 

 

정상에 오르기전 산 아래로는 넓은 평야와 강화 앞바다가 한눈에 펼쳐진다.

 

 

 

 

 

 

 

 

 

 

 

 

 

 

 

 

 

 

 

 

정족산성의 유실된 부분은 이렇게 다시 복원되어 있다. 아마도 오랜 시간이 지나야 세월의 흔적이 묻은 제모습을 찾을 수 있을것만 같다

 

 

 

 

 

정상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이렇게 낮은 산이지만 산아래 풍경이 멋진곳도 아마 없을 듯 하다.

 

 

 

 

 

 

 

 

 

 

전등사의 전경을 볼 수 있는 포인트에서 전등사를 담고있는 별란초님~~
실은 전등사의 야경 (불켜진 연등의 모습)을 찍으려고 6시에 도착했지만, 해가 그렇게 늦게 떨어질줄은 몰랐다.

 

 

 

 

 

아름드리 숲속에 자리잡은 전등사의 모습..

 

 

 

 

 

망원으로 댕겨보니 사람들이 엄청 많았었는데 이 사진에서는 한산해 보이기까지 하다.

 

 

 

 

 

전등사 관리소측에 전화를 해보니 8시에 연등에 불을 켠다고 한다. 두시간이나 남아있는 상황..

 

 

 

 

 

낮은산도 산인지라 바람이 얼마나 차던지 한낮의 더위만 생각하고 겉옷을 챙기지 않았더니 추워지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는 중..

 

 

 

 

 

한시간이 지난 7시가 되서야 야경은 포기하고 남문방향으로 내려왔다.

 

 

 

 

 

남문 종해루의 모습으로 전등사 출입구중 문루가 있는 유일한 문이다.

 

 

 

 

 

 

 

 

 

 

삼랑성 (정족산성)
사적 제130호
정족산성이라고도 하는 삼랑성의 동문으로 쌓은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하고 이름을 삼랑성이라 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보인다.
처음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는데 삼국시대에 이르러 그 위에 막돌을 맞추어가며 쌓았고 성체 안에는 막돌을 채운 튼튼한 석성으로 축조되었다.
전등사를 둘러싸고 있는 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가궐, 조선시대에는 사고와 선원보각이 있었다. 병인양요 때 양헌수 장군이 프랑스군을 물리쳐 이곳에 보관된 조선왕조실록과 왕실 족보인 선원보를 지켜냈다.

 

 

 

 

 

양헌수 승전비
인천시 기념물 제36호
1866년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을 물리친 양헌수 장군의 공적을 기리는 승전비로 양헌수를 비롯한 367명이 프랑스 군대를 맞아 활약한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삼랑성 동문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비의 앞면에는 "순무천총양공헌수승전비"라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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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7년 부처님 오신날, 강화 전등사를 가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35
37 Photos
2013.05.17
ⓒWonHaeng.com, Photographed by BayZer™

 

 

 

 

 

조선왕조실록이 보관되었던 정족산 사고가 있는곳,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여 전등사에 다녀왔다.

 

 

 

 

 

전등사 윤장대

윤장대란 불교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윤장대를 한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있다고 한다. 전등사 윤장대는 보물 제684호를 똑같이 재현한 것이다.

 

 

 

 

 

대조루를 오르는 계단에 연등터널이 설치되어 있다.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 신라로 불교를 전파하러 가던 아도화상이 잠시 머무르며 지은 절로 옛날 이름은 진종사였으며, 고려 말 충렬왕 비인 정화궁주가 이곳에 옥등을 시주한 것 때문에 전등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전등사는 호국기도 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창건 이래 나라의 역사를 움직였던 인사들이 꾸준하게 찾는 수도권 최고의 기도 도량으로 손꼽힌다.

 

 

 

 

 

 

 

 

 

 

전등사 대웅전 (보물 제178호)
조선 광해군 13년(1621)에 다시 지은 목조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이다. 기둥 가운데 부분을 둥글게 하여 안정감을 주었으며 네모서리 기둥 윗부분에는 벌거벗은 여인상을 조각하였다.

 

 

 

 

 

대웅전 내부에는 삼존불이 모셔져 있으며, 천장은 용, 극락조, 연꽃 등으로 화려하게 채색하였고, 부처를 모신 불단과 닫집의 장식 또한 화려하다.

 

 

 

 

 

여인상의 전설

17세기 말, 당시 나라에서 손꼽히는 도편수가 대웅보전 건축을 지휘하고 있었다. 고향에서 멀리 떠나온 그는 공사 도중 사하촌의 한 주막을 드나들며 그곳 주모와 눈이 맞았으며 사랑에 눈이 먼 도편수는 돈이 생길때마다 주모에게 모조리 건네주었다.
도편수는 주모와 함께 살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대웅보전 불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공사 막바지에 이른 어느날 주막으로 찾아가보니 여인은 어느새 야반도주를 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여인에 대한 배반감과 분노 때문에 잠도 오지 않았지만 마음을 다잡고 대웅전 공사를 마무리했다. 도편수는 사랑을 배반하고 도망친 여인을 대웅전 처마 네 군데에 벌거벗은 여인상으로 조각하였으며, 나쁜 짓을 경고하고 죄를 씻게 하기위해 힘들게 추녀를 받치게 하였다고 한다.

 

 

 

 

 

이 네가지 조각의 나부상은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처마를 받치고 있는데, 두손을 올린것도 있고, 왼손이나 오른손으로만 처마를 떠받든 조각도 있으며, 옷을 걸친 것도 있다.

 

 

 

 

 

 

 

 

 

 

전등사 대조루 (인천시 문화재자료 제7호)

전등사 경내로 들어서는 입구에 세운 누각으로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고려 말 대학자 목은 이색의 "전등사시"에서 대조루를 읊은 시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말에는 이미 대조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왼쪽부터 배중손, 정화궁주, 이색의 등이 설치되어 있다. 모두 전등사와 관련 깊은 인물이라고 한다.

 

배중손 (고려 무장)
고려 원종 때의 무장으로 삼별초의 대몽항전을 이끈 장수다. 원종이 개성으로 환도한 후에 강화에 있던 야별초를 이끌고 강화도를 떠나 진도에 근거를 정하고 섬 안에 성곽을 쌓고 궁전을 지어 장기항전의 태세를 갖추었다. 1271년 여.몽 연합군의 총공세를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하여 삼별초의 진도 근거지가 함락되었고 이때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

 

 

 

 

 

정화궁주 (고려 충렬왕의 비)
정화궁주가 옥등을 부처님께 바치는 모습이다.
고려 25대왕인 충렬왕이 태자일때 정비로 맞이한 분으로 충렬왕이 왕이 되면서 원나라(몽고) 제국대장공주와 강제로 결혼하면서 항상 별궁에 거처하고 충렬왕과 가까이 하지 못하였다. 정화궁주는 슬픔을 달래고 착실히 불도를 섬기기 위해 당시 진종사라 불리던 이곳을 원찰로 삼았으며, 인기스님에게 부탁하여 송나라에 가서 대장경을 인쇄하여 이 절에 두게하고, 옥등을 시주하였다.

대장경과 옥등은 법등(부처님의 말씀)을 상징하며, 등을 전하여 전등사라고 하였다.

 

 

 

 

 

이색 (고려 문신이자 유학자)
호는 목은으로 고려 말 야은 길재, 포은 정몽주와 더불어 삼은의 한 사람이다. 공민왕과 우왕, 공양왕때 높은 벼슬에 올랐으나 정몽주가 피살된 후 금천, 여흥, 장흥 등지로 유배되기도 했다.
조선 개국 후 태조는 그의 재능을 아껴 출사를 종용하였으나 끝내 고사하였다. 문하에 권근, 김종직, 변계량 등을 배출하여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하였으며, 불교에 대한 조예도 깊었고, 고려 말에 학문과 정치에 거족을 남긴 인물이었다.
이색은 이곳 전등사를 찾아 "대조루에 올라서서" 라는 시를 남겼는데, 이 시에서 전등사와 정화궁주의 인연을 알려준다.

 

 

 

 

 

 

 

 

 

 

 

 

 

 

 

 

 

 

 

 

 

 

 

 

 

 

 

 

 

 

저녁 8시 즈음에 연등을 나눠주었다. 불을 붙여주고 있는 별란초님..

 

 

 

 

 

 

 

 

 

 

 

 

 

 

 

 

 

 

 

 

 

 

 

 

 

 

 

 

 

 

 

 

 

 

 

 

 

 

 

 

 

 

 

 

 

 

 

 

 

 

 

 

 

 

 

 

 

 

 

 

성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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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성당

 

인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250

9 Photos

2012.10.21

ⓒWonHaeng.com, Photographed by BayZer™

 

 

 

 

본 성당은 고요한 (Charies Jone Corfe) 초대 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 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몇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처음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고 한다.

 

 

성당 건물은 장방형 (넓이 4칸, 길이 10칸) 중층 구조로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한국 정통양식을 따르고 있다.
성당 앞마당에는 큰 보리수나무 두그루가 서있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하여
조화의 아름다움과 토착정신을 드러나게 하였다.

 

 

성당 내외부에는 서양식 장식이 거의 없는 순수한 한식 목조건축으로
한국기독교 역사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성당건물이다.

 

 

 

용흥궁 담 너머로 보이는 성당의 모습

 

 

 

Ganghwa Anglican Church

Historical Site No.424

This church was consecrated by the first Bishop Charies John Corfe in 1900, and named for Saint Peter and Paul.
A royal architect led building work. Since then, several mending works have been done, but it preserved the original form well. The site of this building resembles the Ask, demonstrating this church's image of Salvation.

 

 

 

 

Based on the Korean traditional mode, this rectangular shaped church (width 7.2meters, Lenght 18meters) applies the Basilican style to its placement and interior, representing the beauty of harmony of westem and Korean aboriginal architect techniq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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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고려산 진달래 축제

기간 : 2012.4.20(금) ~ 5.4(금)

장소 : 강화 고려산 일원

고려산정상에서 능선 북사면을 따라 낙조봉까지 4km 약 20만평에 분홍빛 진달래 꽃밭이 아름다운 수를놓고 있어요^^

산행일 : 4.28일,, 하늘은 흐렸고진달래는 만개하였음, 5월 8일까지는 개화상태가 지속될것이라고 합니다.

참고사항 : 해뜬다음 출발해 강화에 도착한다면 심한 교통체증을 겪을수 있으니 일출을 본다는 생각으로 일찍 출발한다면 여유있게 다녀올 수 있습니다. 백련사 입구까지 차를 타고 올라가려면 아침일찍 도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통통제를 하기때문에 강화 고인돌공원에 주차 후 걸어서 올라가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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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4.29 20:50
    즐거운 산행(?)이였다우~~<br>다음 출사를 기대하며......<br>근데....날씨가 조금은 맘에 안들었다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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