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전등사]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삼랑성 내의 천년고찰

2021. 9. 23. 23:42+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문화유산 답사기

[강화 전등사]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정족산 삼랑성 내의 천년고찰

문화유산 답사기
인천 강화

Photographed by BayZer™

2021.09.18

 

 

 

동문주차장에 주차후 전등사로 가는 길
동문주차장 입구를 지나 500m정도 더 진행하면 남문주차장도 있다.
남문 방향쪽이 올라가기가 조금 더 수월하다고 하는데 왠지 동문 쪽이 정문같이 느껴져 올때마다 이곳으로 올라간다.

 

 

 

주차장에서 많은 식당들을 지난후 햇살을 잔뜩 머금은 울창한 숲길을 올라가야 한다.
전등사 입구(삼랑성) 동문매표소까지는 주차장에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강화 삼랑성

Samnangseong Fortress, Ganghwa
사적 제130호


동문매표소
전등사로 들어갈수 있는 문은 정족산성이라고도 불리는 삼랑성 동문과 남문이 있다.
삼랑성 성돌이길을 걸어보니 북문은 매표소는 없지만 강화나들길 코스가 이어지기 때문에 개방되어 있고, 서문은 잠겨있었다.
전등사는 삼랑성 안에 위치해 있으며 입장료를 받는다.

* 입장료 : 성인4,000원, 청소년3,000원, 어린이1,500원

 

 

 

삼랑성
단군이 세 아들에게 성을 쌓게 하고 이름을 삼랑성이라고 했다.
고려시대에는 임시로 지은 궁궐인 가궐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정족산 사고와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이 있었다.
이곳은 고종3년(1866년)에 프랑스 군대가 침공한 병인양요때 양헌수 장군의 군대가 프랑스군을 무찌른 곳으로 유명하다.

 

 

 

양헌수 장군 승전비

Monument of Yang Heon-su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6호


삼랑성을 들어오면 오른쪽에 위치한 비각으로, 이곳에 1866년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을 물리친 양헌수 장군의 공적을 기리는 비가 있다.

 

 

 

비 앞면에는 "巡撫千總梁公憲洙勝戰碑(순무천총양공헌수승전비)"라고 새겨져 있다.
승전비에는 양헌수를 비롯한 367명이 프랑스 군대를 맞아 활약한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전등사 소나무
양헌수 승전비 맞은편에 서 있는 이 나무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큰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 있는 약300년 된 소나무다.
일본은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쇠붙이를 얻기 위해 사찰의 종, 숟가락, 젓가락까지 빼앗았고, 소나무의 송진까지 공출품목에 넣어서 수탈하였다.
지금도 주변의 큰 소나무에서 발견되는 상처들은 태평양전쟁 당시 무기의 대체연료로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만든 침략의 깊은 상흔의 흔적으로 보는 이들에게 침묵의 역사를 전하고 있는 듯하다.

 

 

 

전등사 배치도
죽림다원 앞 윤장대와 남문에서 들어오면 보이던 화장실은 현재 없어진 상태다.

 

 

 

한낮에는 아직도 덥지만 계절은 이미 가을임을 알려 주려는듯,, 어느새 가을이구나 세삼 느끼게 된다.

 

 

 

전등사로 가는 길은 이렇게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몇년전에 왔을때는 없었던 전각 선불장이 보인다.

 

 

 

 

 

 

선불장


전등사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하는 대조루에 가기전 선불장으로 올라가는 길이 새롭게 만들어져 있어 먼저 들려보기로 한다.

 

 

 

원래 선불장은 부처를 선발하는 장소라는 뜻으로 보통 사찰의 선원을 지칭하는 불교 용어라고 한다.

 

 

 

1층은 공양간이고, 2층 선불장은 템플스테이를 위한 공간이다.

 

 

 

수령이 약350년 된 은행나무로 높이가 20m, 나무 둘레가 4m로, 2001년에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삼랑성 내에는  이렇게 300년 이상된 거목들이 많다.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년)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진종사라 부르다가 충렬왕의 원비 정화궁주가 승려 인기에게 부탁해서 송나라의 대장경을 간행하여 이 절에 보관하도록 하고, 옥등을 시주한 후 전등사로 부르게 되었다.
'옥등'의 밝음도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하며, '전등'은 부처님의 지혜가 전해진 것을 뜻한다.

 

 

 

대조루 옆 언덕에 꽃무릇이 활짝 피었다.

 

 

 

아침에 다녀온 길상사에 비하면 규모는 적지만 활짝 핀 모습에 눈이 현혹될 정도다.

 

 

 

삼랑성 성돌이길까지 돌아볼 예정이라 늦어지기 전에 이제 경내로 들어서야 한다.

 

 

 

대조루

Daejoru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호


전등사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운 누각식 건물로 대조루 아래를 통과해 들어간다.

 

 

 

대조루가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수 없으나 고려 말 대학자 목은 이색의 <전등사시>에서 대조루를 읊은 시구가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말에는 이미 대조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32년 사찰 안의 건물들을 다시 수리하면서 대조루도 다시 지었다고 한다.

 

 

 

전등사 대웅보전

Daeungbojeon Hall of Jeondeungsa Temple, Ganghwa
보물 제178호


대웅보전
대웅보전은 전등사의 중심 건물로,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 약사여래불을 모신 곳이다.
대웅은 법화경에서 위대한 영웅을 뜻하는 말로 석가모니불을 가리킨다.

 

 

 

이곳에서 오랜 세월을 지켜온 이 법당은 이제 빛이 바래고, 꽃문양은 지워져 낡아 보이지만 그 빛깔마저 우아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대웅보전 내부에는 1544년 정수사에서 개판한 <묘법연화경> 목판 104매가 보관되어 있다. 보물 제1908호 지정된 <묘법연화경>은 <법화경>이라고도 하며, <화엄경>과 함께 불교사상을 확립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경전이다.
이 목판은 성달생의 글씨로 세종25년(1443년)에 완주 화암사에서 새긴것을 중종38년(1543년)에 마니산 정수사에서 복각한 것이다. 전체 105판 가운데 104판이 남아 있으며, 그중 1판은 한국전쟁 당시 외부로 유출되었다고 한다.

 

 

 

조선 광해군13년(1621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지붕 처마 무게를 받치는 구조인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짜여 있는 다포양식 건물이다. 2020년 9월에 지붕의 기와를 교체하는 번와 공사가 완료되었다고 한다.
능숙한 조각솜씨가 돋보이는 조선 중기의 사찰 건축물로, 대웅보전에서만 볼수 있는 특별한 조각품이 있는데, 바로 건물 모서리 추녀 밑에 보이는 나부상이다.

 

 

 

추녀 밑 나부상
건물 네 모서리 추녀 밑에는 벌거벗은 사람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절을 짓던 목수의 재물을 가로채 도망간 주막 여인의 모습이라고 한다. 나쁜 짓을 꾸짖어 하루 세번 부처님 말씀을 들으며 죄를 씻고 깨달음을 얻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의미로 추녀 밑에 새겨 추녀를 받치게 하였다고 한다.
한손으로 추녀를 받치며 지은 표정에서 여인의 잔꾀를 보는듯 하다.

 

 

 

 

 

 

목조 석가여래 삼불 좌상

Wooden Seated Sakyamuni Buddha Triad
보물 제1785호


조선 인조 원년(1623년)에 수연을 비롯한 6명의 승려 조각가가 제작한 불상이다.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이 삼불좌상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아미타여래가, 왼쪽에 약사여래가 모셔져 있다.
부처를 모신 불단과 불상 머리 위의 닫집 장식이 화려하다.

* 닫집 : 법당 안 불단 위를 덮도록 만든 집의 모형, 부처님이 설법할때 사용한 햇볕 가리개를 표현한 것.

 

 

 

대웅보전 수미단

Buddhist Altar in Daeungbojeon Hall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8호


수미단은 법당 내부에서 불상을 모셔놓은 단을 말한다.
불교에서 수미산은 세계의 중앙에 있으며, 여기에 부처가 있다고 여긴다. 이 때문에 법당에서는 부처를 모시는 곳을 수미단이라고 한다. 전등사 대웅보전 수미단은 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3단으로 구성되어 각 단에는 수미산을 상징하는 각종 문양이 새겨져 있다.
천장은 용, 극락조, 연꽃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대웅보전 후불탱

Hanging Scroll Behind the Buddha in Daeungbojeon Hall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1호

후불탱은 불상 뒤에 봉안하는 불화를 말하며, 불상과 함께 예배의 대상이 된다. 이 그림은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양옆에 아미타여래와 약사여래를 그린 삼세불화이다.
1870년대 중반부터 1930년경까지 활발하게 불화를 제작하였던 고산 축연스님의 작품으로 당시 보경 보현스님이 동참하여 그렸으며 상궁들이 후원하였다.

 

 

 

대웅보전 앞에는 연밭을 꾸며놓은듯 넓은 항아리 수조에 연이 자라고 있다.

 

 

 

강설당


스님들이 경전을 공부하는 건물이다.

 

 

 

강설당 우측에는 예쁜 화분들로 꽃밭을 이룬 전등사 서점이 있다. 강설당 옆쪽으로 돌아 뒤로 가면 선불장으로 갈수 있다.

* 저녁이 다 된 시간에 담은 사진임~

 

 

 

향로전


향로전은 원래 노전스님이 머물던 처소로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향로전의 파손상태가 매우 심각해 2019년 10월에 해체 보수공사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보수공사는 완료 되었지만 보다시피 아직 현판이 없다.
사찰 전체의 위상에 맞게 요사채 보다는 부처님을 모시는 관음전으로 재탄생할 것이라고 한다.

 

 

 

약사전

Yaksajeon Hall of Jeondeungsa Temple
보물 제179호


약사전은 중생의 병을 고쳐주는 약사여래를 모시는 법당이다.
약사전 앞 계단에는 꽃길이 만들어져 있다.

 

 

 

전등사 약사전이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광해13년(1621년)에 고쳐 지은 대웅전과 건축 양식이 유사하여 서로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약사전도 대웅보전과 같이 다포 양식의 건물이다.

 

 

 

내부에는 석불좌상과 불상 뒤에 모시는 후불도, 현왕도가 있으며 모두 인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 현왕도 : 사람이 죽은 뒤 3일후 받는 심판을 담당하는 지옥세계의 왕을 그린 그림

 

 

 

약사전 석불좌상

Stone Seated Buddha in Yaksajeon Hall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7호


석불좌상은 돌로 만든 앉아있는 모양의 불상으로 고려 말 조선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약사여래상이다. 배꼽 부근에서 두손으로 약그릇을 들고 있는 모습이 가장 큰 특징이다.
사람들은 약사여래가 모든 중생의 질병을 고치고 수명을 연장해주며 재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음식과 옷을 제공해준다고 믿는다. 이 약사여래불은 최근에 금박으로 개금되어 있다.

 

 

 

약사전 현왕탱

Buddhist Painting in Yaksajeon Hall (The King of Hell)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3호


현왕탱은 사람이 죽은지 3일이 된 망자를 심판하는 현왕과 권속을 그린 불화이다.
약사전 현왕탱은 약사전 불단 왼쪽에 자리한 영단(영혼의 위패를 두는 단)에 걸려 있다. 화면 하단에는 '고종21년(1884년)에 승려 화가인 진철과 긍법이 그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약사전 후불탱

Hanging Scroll Behind the Buddha in Yaksajeon Hall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4호

후불탱은 불상 뒤에 봉안하는 불화를 말하며 불상과 함께 예배의 대상이다.
이 불화는 고종21년(1884년)에 제작된 것으로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폭 중앙에 약사삼존불을 배치하고, 화면의 네 모서리에는 부처의 가르침을 지키는 네명의 수호신장인 사천왕을 그렸다. 약사여래의 광배 양옆에는 부처의 제자인 가섭과 아난을 그렸다.
약사여래는 왼손에 금빛의 약함을 들고 있는데, 이는 약사여래를 상징하는 가장 큰 특징이다.

 

 

 

명부전


약사전 옆에 위치한 명부전으로 정확한 창건 연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 전각은 죽은 사람들이 49일이 지나 재판을 받을 때까지 그들의 넋을 위해 치성을 드리는 곳이다.
목조 지장보살 삼존상과 시왕상이 모셔져 있으며 총 31구의 불상이 있다.
대개 명부전은 지장전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죽은 이를 재판하는 시왕이 있는 곳은 명부전, 지장보살을 모셨을 경우에는 지장전이라고 부른다.

 

 

 

명부전 현판 옆 용 조각

 

 

 

 

 

 

목조 지장보살 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Wooden Ksitigarbha Badhisattva Triad and Ten Underworld King of Jeondeungsa Temple
보물 제1786호


지장보살은 저승 세계인 명부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모두 구원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보살을 말한다. 불단 가운데에는 전체적인 비례와 조형미가 뛰어난 민머리의 지장보살이 앉아 있다.
지장보살을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사람들의 악한 마음을 없애 준다는 귀신의 왕인 무독귀왕이 서 있고, 왼쪽에는 사후 세계를 경험하고 이승에 돌아와 자신이 본 바를 세상에 알렸다는 도명존자가 젊은 승려의 모습으로 서 있다.

 

 

 

시왕은 저승 세계에서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10명의 왕이라고 한다.
양쪽 시왕상 옆으로는 시왕의 재판을 보조하는 판관상, 귀왕상, 녹사상, 동자상, 불교의 수호신인 인왕상 등 여러 권속들이 대칭을 이루며 자리하고 있다. 모습이 독특하고 아름다우며 보존이 잘 되어있다.
이 불상들은 조선 인조14년(1636년)에 수연을 포함한 12명의 승려 조각가와 신도 4명이 함께 제작하였다고 발원문에 기록되어 있으며, 발원문은 지장보살상에서 발견되었다.

 

 

 

극락암


명부전과 종각 사이의 계단을 오르면 아담하게 세워져 있는 전각이다.
전등사 조실이었던 서운 큰스님과 상묵 큰스님이 열반할 때까지 머무신 곳이라고 한다.

 

 

 

 

 

 

전등사 철종

Iron Bell of Jeondeungsa Temple
보물 제393호


전등사 철종은 중국 송나라때 회주 승명사에서 무쇠로 만들어진 중국 종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무기를 만들려고 지금의 인천시 부평 병기창에다 갖다 놓은 것을 광복 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종의 꼭대기에는 용 두마리로 만든 종 고리가 있다.
몸통에는 중국 하남성 백암산 승명사의 종이라는 것과 북송 철종4년(1097년)에 만들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원래는 대조루 옆 종루에 걸려 있었으나 보물인 철종을 보관하기 위해 종각을 세우고 2004년에 옮겼다고 한다.

 

 

 

"당신의 동전이 어려운 이웃에게 큰힘이 됩니다"
이웃도 돕고, 소원성취도 하고~~^^

 

 

 

전등사 느티나무

수령 : 약400년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35


진종사로 창건된 전등사는 조선 광해군때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었다가 1615년 재건하였는데, 그때 풍치목으로 심은 나무로 추정된다.

 

 

 

이 느티나무는 대웅전 뜰 앞에서 전등사를 찾는 이들이 앉아 쉴수있는 쉼터가 되어준다.
수령 약400년, 높이 20m, 둘레 4.6m로 1997년에 보호수로 지정되어, 주변의 큰 나무들과 조화를 이루며 운치를 더하고 있다.

 

 

 

종루의 범종, 법고, 목어


보물로 지정된 전등사 철종을 명부전 앞 종각으로 옮기면서 이 종루에는 일반 범종이 걸리게 되었다. 범종 양 옆으로는 법고와 목어가 설치되어 있다.
법고는 법을 전하는 북으로 각종 불교 의식에 쓰이는 북을 말하는데, 북을 칠 때는 채로 '마음 심(心)'자를 그리며 두드린다고 한다.

 

 

 

이 범종은 조석 예불때 타종하며 현재 사용되고 있는 종이다.

 

 

 

대조루 아래에서 바라본 종루에 목어가 보인다.
목어는 처음에는 단순한 물고기 모양이었으나, 여의주를 문 용머리를 취한 용두어신의 형태로 변형되었다. 물 속에 사는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사찰 뒷쪽 산기슭으로 올라가면 삼성각과 정족사고를 볼수 있다.

 

 

 

삼성각 가는 길

 

 

 

삼성각


삼성각은 산신, 칠성, 독성(나반존자) 등 삼성을 모신 건물로, 각각 재물과 수명, 복을 관장한다.
삼성 신앙은 불교가 한국 사회에 토착화하면서 고유의 토속신앙이 불교와 합쳐져 생긴 신앙 형태라고 한다.

 

 

 

삼성각은 보통 사찰 뒤쪽에 자리하게 된다.
삼성은 모두 불교 밖에서 유입된 신들로, 하근기 중생을 위한 방편으로 채택되었기 때문에, 그 건물의 이름을 전(殿)이라 하지 않고 각(閣)으로 불린다.

 

 

 

산신은 한국의 토속신 산신령에 해당하는 호법선신이다.
나이 든 도사의 모습인 산신이라는 인격신과 화신인 호랑이가 그려져 있다.

 

 

 

독성은 천태산에서 홀로 선정을 닦아 독성, 독수성이라 불린 나반존자를 일컫는다.

 

 

 

칠성은 북두칠성을 뜻하며, 수명장수신을 말한다.
대개는 손에 금륜을 든 치성광여래를 주존으로 하여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좌우에 협시로 둔다.

 

 

 

정족사고 가는 길에

 

 

 

정족산사고지

Jeongjoksan Archives Site in Ganghwa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7호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정족사고에 다다른다. 산새소리가 들려올뿐 경내의 소음도 들리지 않는 한적한 곳이다.
오른편에 취향당도 함께 위치해 있다.

 

 

 

정족사고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고(史庫)인 장사각과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던 선원보각이 있는 곳이다.
현재 내부에는 들어가 볼수 없는 상태였다.

 

 

 

1931년에 간행된 <조선고적도보>에 이 사고의 사진이 수록된 것으로 보아 이후에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실록은 1910년 국권침탈 이후 서울로 옮겨졌고, 지금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보존, 관리하고 있다.
이 담장 모퉁이를 돌아 산길을 올라가면 북문이 나온다.

 

 

 

정족사고와 선원보각

조선은 초기부터 <조선왕조실록>을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 등 네곳에 보관하였다.
임진왜란때 유일하게 남은 전주사고본이 묘향산사고로 옮겼다가 다시 마니산사고를 거쳐 현종1년(1660년) 이곳으로 옮기고, 오른편에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을 함께 지었다. 1998년 두 건물을 복원한 후 옛 현판을 다시 달았다.

 

 

 

취향당

 

 

 

취향당과 오른편에 있는 장독대들

 

 

 

 

 

 

정족산성 진지

Military Garrison Site in Jeongjoksanseong Fortress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6호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정족산 사고를 보호할 목적으로 설치한 군사 주둔지 정족진이 있던 곳이다.
1907년 방화로 소실되었으나 2009년 발굴 조사하여 11개소의 건물지를 포함해 대규모 유구가 발굴되었다.

 

 

 

1870년대 무렵에 제작된 정족산성 일대 지도인 <정족산성진도>에 보이는 진사, 내사 및 무기와 군량을 저장하던 창고인 포량고 등의 건물지와 담장 시설, 문지 등이 대부분 확인되었다.
포량고 건물 바닥 전면에는 벽돌을 깐 것으로 파악되며, 정족진 내부에서 전면 외부로 빗물 등을 빼내기 위한 배수구 시설도 온전한 모습으로 발굴되었다.

 

 

 

 

 

 

 

 

 

월송요의 장독대

 

 

 

갑자기 법고소리가 경내에 울려퍼지자 사람들이 종각으로 모여들었다.

* 템플스테이 중임

 

 

 

무설전


최근에 새롭게 생긴 법당이자 복합 문화공간인 무설전이 있다.
그림이 있는 법당, 서운갤러리라는 안내판에서 볼수 있듯 불교와 미술의 만남, 즉 종교와 예술이 조화된 공간이다.

 

 

 

이번 서운갤러리 개관기념 행사는 전등사 소장품 전시와 사찰 운영의 이색적 현대미술 전시공간이라 하니 다녀간다면 꼭 한번 들려볼 일이다.
이 사진 담은 시간이 18:40분, 정족산 성돌이길을 돌고 내려와 들렸던터라 너무 늦어 내부에는 들어가보지 않았다.

 

 

 

전등사 은행나무


높이 24m, 둘레 6.5m로 수령이 약 700년된 은행나무다.
긴 세월의 풍상과 역사의 상처를 안은채 오가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있다.

 

 

 

노승나무와 동자승나무 이야기

 

 

 

불심 깊은 전등사 고양이

 

 

 

한동안 산사에 울려퍼지는 타종소리를 들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매일매일 좋은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