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한국근현대사박물관] 헤이리마을 추억의 골목동네 달동네

2023. 2. 13. 21:10+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관람전시 이야기

2023.02.10
한국근현대사박물관 (사진 많음 주의)

 

 

 

오후 시간이 통째로 비는 날,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라 가볼만한 실내여행지를 찾다가 다녀오게 된 한국근현대사박물관.

 

 

 

 

외관부터 많은 물건들로 가득하다.
다소 복잡한 느낌은 들지만 지금은 볼수없는 물건들이 대부분이라 어르신들에게는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아이들에게는 그때 그시절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떻게 살았는지 삶의 흔적들을 볼수 있는 곳이다.

* 주차무료
* 입장료 성인(19세이상) 7,000원, 소인(36개월~고교생) 5,000원

* 관람시간 : 오전10:00 ~ 오후 6시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월요일이 공휴일이면 정상 개관)
* 일요일, 공휴일, 명절, 여름방학(휴가철)기간에는 휴관없이 정상 개관

 

 

 

박물관 입구

박물관을 만난 첫 느낌은 흡사 골동품점을 보는듯 하다.

 

 

 

구멍가게

입구 오른쪽에는 일용잡화를 취급하는 금촌상회가 있다. 버스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보시게, 대포 한잔 하세나!
구멍가게 안에는 대폿집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어 입장전부터 재미가 한층 더해진다.

 

 

 

박물관 매표소

빈틈없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소품들로 들어서자마자 우와~!!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매표후 받은 입장권

 

 

 

이곳은 근현대 생활자료 7만여점을 구매하거나 기증받아 집대성하여 추억속의 골목동네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관람 방향은 바닥의 화살표만 따라가면 된다는 안내를 받고 한국 근현대 생활사를 만나러 들어가 본다.

 

 

 

전시관 시작 지점이자 마지막 지점인 곳,

 

 

 

풍물관인 지하1층으로 내려가기 전에 골목풍경을 내려다 볼수 있다.

 

 

 

양철지붕에는 고추를 말리는 중이고, 기와 위로 호박덩쿨이 넘어와 길게 늘어져 있다.
저잣거리의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재래시장의 풍경과 별반 다를게 없어 보인다.

 

 

 

이리저리 좁은 골목을 지나가며 오래된 집들과 가게들 사이에 버스정류장도 있다.

 

 

 

골목동네에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우체국.
오른편에는 인쇄소가 있고, 복덩방과 대서소 등이 좁은 골목 양옆으로 줄지어 열려 있다.

 

 

 

우체국

고종 19년(1882년)에 설치된 우정사가 근대적인 우편제도의 시작이었다.
1960년대 말까지는 전화와 같은 통신 시설이 부족하여 편지(서신)로 소식을 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우체국에서는 우편물 외에 금융, 전보, 소포 등도 취급하였으나 현재 전보 업무는 전화국으로 이전되었다.
오래된 우표들과 깊은 사연이 있는 문서들까지 상세하게 전시되어 있다.

 

 

 

인쇄소

활자판을 사용하여 명함이나 봉투, 광고지 등을 인쇄하는 공장이었다.

 

 

 

전파사

70 ~ 80년대 어느 동네를 가더라도 꼭 있었던 만물박사 전파사, 고장난 라디오나 선풍기, TV, 곤로 등 가리지 않고 수리해서 오래 쓸수 있었다.

 

 

 

만물상

일상 생활에 필요한 온갖 물건들을 파는 가게이다.
소쿠리부터 절구, 대패, 각종 공구들, 심지어 목탁까지 걸려 있다.

 

 

 

어느 만물상인의 일화
젊었을때부터 운영하던 만물상 가게가 2008년 재개발 지역으로 편입되어 점포를 정리하던 중에 40여년 전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는 연탄집게를 들어보이며 힘들었던 지난 날을 회상하고 있다.

 

 

 

석유가게

우리나라에 석유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1890년 미국의 스탠다드 석유회사가 국내 총판을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1896년 7월18일자 독립신문에는 처음으로 석유를 파는 광고가 실리기도 하였다.

 

 

 

석유가게를 지나 골목 끝에는 약방이 있고 계단을 올라가면 전당포가 나온다.

 

 

 

약국

최초의 한국인 약사는 유세환이었고, 최초의 약국 개원은 한일합방 이후 1910년 서울 종로3가의 '인수당약국'이 문을 연 것이 처음이었다. 아픈 머리를 쥐고 서둘러 약을 짓는 모습과 실험실에 있던 병같은 모양의 약병이 진열된 옛날 약국의 모습이다.

 

 

 

전당포

1960년대 전후의 모습으로 유가물을 담보로 보관하고 자금을 대여하여 이자를 받는 서민 금융기관이었다.
전당포가 절박한 삶의 '마지막 구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고작 몇천 원짜리 꼬리표를 매단 채 시커먼 금고 속으로 사라지는 고물 태엽시계 같은 삶의 사연들로 전당포 문지방이 닳아지던 시절이 있었다.
전당포가 합법화된 60년대만 해도 양복과 놋그릇까지 받았다. 미제 제니스 진공관 라디오와 미싱은 대환영이었다.

나이 오십을 넘긴 연배라면 전당포 철창 앞에서 목젖을 꿀걱이며 초인종을 누른 뒤, 찔러도 피 한방울 나지 않을것 같은 얼굴로 담보물을 지겹도록 살피던 전주의 표정에서 나락과 천국을 함께 맛보았던 추억을 되살릴수 있을 것이다.

 

 

 

다방

당시의 다방은 마담을 두고 손님을 맞이하는 곳으로 맞선을 보거나 데이트 장소로 쓰이는 최고의 사교장이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전국민의 약속 장소였던 다방은 단골 손님들이 장기, 바둑을 두며 여가를 즐겼고, 소상인들은 비지니스 공간으로 활용하여 "김사장님 전화 받으세요"하면 손님 다반수가 전화기 앞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헤프닝도 있었다.
또한 음악 다방은 실업자의 아지트가 되기도 했으며 장발의 미남 DJ오빠는 도끼빗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다녔으며 인기가 좋아 아가씨들은 DJ박스 앞에 앉아 노래를 신청하기도 했다.

 

 

 

미장원

파마, 고데, 신부화장까지 여성의 아름다움이 시작되는 곳이지만, 촌티나는 빠글빠글 파마머리가 뒤돌아 볼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던 70년대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음식점 풍경

술과 식사 등을 팔거나 나그네가 묵어가기도 하는 곳이다.

 

 

 

선술집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며 소주나 탁배기 한잔으로 피로를 달래던 선술집
찌그러진 주전자 가득 담긴 막걸리와, 주인의 명품 파전 하나면 저녁 늦게까지 얘기가 이어졌다.

 

 

 

힘겨웠던 일상을 달래주던 대폿집 풍경

 

 

 

사진관

백일사진, 돌사진, 가족들 사진등 유일하게 추억을 만들어 주던 아날로그 사진관,
사진관을 지나 금촌극장으로 골목길이 이어진다.

 

 

 

금촌극장

당시에는 새로운 프로가 나오면 넓은 합판에 포스터를 직접 그려서 걸었었고, 가끔 영화배우 얼굴과 닮지 않아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영화 포스터도 골목 담장이나 벽에 풀을 칠해 발라 붙였다.

 

 

 

구두닦이

계단 아래 좁은 틈에는 구두닦이가 자리를 잡았다. 구두의 굽을 갈거나 광택과 밑창수선까지 했다.
당시에 다방 안에는 찍새 소년이 있었는데, 닦을 구두를 모아서 구두닦이에게 가져다주고 심부름 값을 받는 꼬마 아이를 속된 말로 찍새라고 불렀다.

 

 

 

편물점과 한복집, 양장점이 한곳에 모여 있다.

 

 

 

한복집

무명치마에 흰 저고리가 잘 어울렸던 어머니들의 젊은시절 고운 모습을 떠올려 보자.

 

 

 

자전차포

막다른 골목에서 자전차포를 볼수 있다. 한창 수리중인 자전거들이 적나라하게 해체되어 있다.

 

 

 

철공소

좁은 공간에 많은 가게와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보니 사진 찍기에 애매한 부분이 많다.
카메라로는 빛이 부족해 삼각대 없이 찍기가 힘들지만 삼각대 사용은 금지되어 있다. 폰으로는 광각으로 담아야 화각이 나오는 좁은 공간들이 많다.

 

 

 

 

 

 

대장간

풀무를 차려놓고 시우쇠를 다루는 대장간은 쇠를 달구어 각종 연장을 만드는 곳이다.
옛날에는 시골 장터나 마을 단위로 대장간이 있어 무딘 농기구나 기타 각종 연장을 불에 달구어 벼리기도 하고 새로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대장간이 없는 마을로 이곳저곳 떠돌아 다니면서 연장을 벼리는 떠돌이 대장장이도 있었다.

 

 

 

국밥집

고장에 따라 국밥집은 한 시대를 풍미했고, 시골 옛 국밥집은 나그네의 배고픔을 달래주는 곳이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 서울 남대문통 (오늘날의 남대문시장)의 '꿀꿀이 국밥집'은 배고픔에 지친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곳이었다고 한다.

 

 

 

떡방앗간과 기름집도 동네 풍경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떡방앗간

배고파서 보리 개떡으로 배를 채우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에는 먹을게 부족했던 시절이라 떡은 명절이 되어서야 먹을수 있던 귀한 음식이었다.
떡방앗간이 제일 바쁠 때는 명절 무렵이다. 이때 떡방앗간 앞에서는 줄을 길게 늘어 섰으며 떡 냄새가 군침을 흘리게 했다.
당시 살기는 힘들었지만 우리네 민속 명절은 예나 지금이나 온 국민들의 축제 날이다.

 

 

 

장군보살

많은 소품들과 상황에 맞는 음악이 함께 있으니 보는 재미가 더욱 쏠쏠하다. 무엇보다도 인형들이 당시의 생활사를 엿볼수 있는 상황을 연출해주고 있어서 이해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한약방

1960년 전후의 모습으로 각종 약초를 재료로 하여 한약을 짓기도 하며 침술 치료를 해주었다.

 

 

 

떠돌이 새우젓 장수

1950년대 이곳 저곳 마을을 찾아 다니며 새우젓을 파는 장사가 삶의 고단함에 힘들고 지쳐 쉬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인다.

 

 

 

골목을 돌아 나오면 모퉁이에 이발관이 자리를 잡았고, 맞은편에는 단상정류소가 있다.

 

 

 

이발관

키가 작은 아이들은 의자에 송판을 걸치고 그 위에 앉아야 했다.
바리깡으로 까까머리 만들어 주는 이발사 아저씨와 그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저씨가 신문을 보고 있다.

 

 

 

뻥튀기장수

뻥이요~!! 를 외치면 지나가던 사람들은 알면서도 깜짝 놀라게된다.
옥수수, 쌀, 떡 등으로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주던 뻥튀기 아저씨도 요즘엔 볼수 없는 정겨운 풍경이다.

 

 

 

버스정류소

버스 정류장이 있는걸 보니 이곳이 그래도 번화가 인듯 하다. 버스표는 담배가게에서 사야했다.

 

 

 

담배가게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보면 이것 저것 물건들을 구비해 놓았다.

 

 

 

변소

정류소 옆에는 공동으로 쓰는 변소가 있다.
열린 문으로 보이는 아이가 놀란 듯한 표정이고, 사각으로 잘라놓은 신문지는 당시에는 제일 많이 쓰던 휴지였다. 옆에 세워진 똥바가지가 너무 리얼하다.

 

 

 

저잣거리의 장날 풍경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으며 그나마 쌀독에 한줌 남아있는 쌀을 장터에 나가 팔아 아이들 엿가락이라도 사가지고 오셨다.

 

 

 

엿장수

엿장수가 큰 가위로 찰칵찰칵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동네에 등장하면 아이들이 구멍난 고무신이나 놋그릇, 고철 등을 들고 나와 엿과 바꿔 먹던 시절이 있었다.

 

 

 

두부장수

옛날 떠돌이 두부장수는 종을 치며 이 골목, 저 골목 "두부 사려~"를 외치면서 두부를 팔기도 했다.
순두부 한그룻 10원, 이곳은 장터골목에 노점상을 차려놓고 누런 회포대나 신문지로 두부를 두리뭉실하게 싸서 팔던 곳이다. 그 옆에는 생선장수가 있고 강아지와 고양이가 주인 눈치를 보며 생선을 바라보고 있다.

 

 

 

땜쟁이

전통 한옥집 담장 앞에 자리잡은 땜쟁이 아저씨는 양은냄비, 가마솥, 양철그릇 등 구멍난 모든 것을 땜질해 주었다.

 

 

 

쌀가게

장터 맞은편에 있는 쌀가게 풍경, 여러 곡식들을 즐비하다.

 

 

 

한옥집

중서부 지방의 6칸 전통 한옥으로 지어진 집이었으나 재개발로 철거되기 직전인 2004년도 당 박물관에서 기증받아 3칸 규모로 축소 이전하였다.
화롯불에 인두를 달궈 한복 주름을 잡고 있는 할머니, 대추로 간식을 삼아 한가로이 신문을 보고 있는 할아버지.
1950년대 건축 당시에는 부엌이 아궁이였으나 60년대에 연탄 화덕으로 일부 개조하여 살았던, 생활수준이 상류층이었던 집이다.

 

 

 

서민방

반면 서민들이 살던 방은 콩나물 시루가 그 시대를 엿볼수 있게 한다.
방 안 분위기는 칙칙하지만 칼라 비닐장판은 화사해 보인다. 당시에는 대부분 종이장판을 깔고 살았는데 신식 비닐장판이 보급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였으며, 청소까지도 깔끔하게 할 수 있어 인기가 매우 높았다고 한다.

 

 

 

삵 바느질 집

한복집이나 양장점 같은 점포가 아닌 일반 가정집에서 한복을 만들고 수선을 해주기도 했다.

"삵 바느질 집에서 자란 딸이 남긴 사연중에서"
우리집은 오남매가 살았다.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여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하시며 우리를 키우셨다.
어느날 한잠을 자고 눈을 떠보니 아직도 앉아서 바느질을 하고 계시던 어머니...
왜 안 주무시냐고 하면 벌써 자고 일어났다고 하셨다. 아마도 모레까지 지어야 할 한복 때문인듯 하였다.
우리 오남매 키우시느라고 밤낮으로 일 하시며 허리 한번 마음대로 펴보시지 못해도 항상 난 괜찮다고 인자하게 웃으시던 그 모습이...

 

 

 

수돗가

동네에는 공동 우물터도 있었다. 우물이라기 보다는 공동 수도 같은데 펌프질을 해야 물이 나왔다.

 

 

 

연탄가게

지금은 연탄가게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집집마다 연탄을 때던 시대에는 연탄가게만큼 바쁜 데도 없었다.
아침 저녁, 때도 없이 리어카에 연탄을 싣고 높은 골목길을 따라 힘들게 배달 가야했고, 돈이 없어 연탄을 넉넉히 재워둘 수 없는 집에서는 새끼줄에 연탄을 끼워 낱장으로 사가는 모습도 흔히 볼수 있었다.

 

 

 

 

 

달동네

허름한 집들이 다닥 다닥 붙어있는 좁은 골목길의 풍경, 그 꼭대기에 올라서면 달이 훤히 보인다하여 달동네라 불렀다.
옥탑방에서 빨래를 너는 모습과 주변 살림살이들이 고단한 삶의 터전이었던 달동네의 모습을 대변해 준다.

 

달동네하면 생각나는 인천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도 구경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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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70년대 달동네 삶을 재현하다

관람전시 이야기 인천 송현동 Photographed by BayZer™ 2021.04.04 비온 다음날이라 미세먼지 없는 쾌청한 하늘이다. 휴일 아침 가볼만한 곳을 찾다가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으로 향한다. 개관했을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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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방

1960 ~ 70년대 별거없는 세간살이가 단촐해 보인다. 달동네 삶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그래도 이곳은 꿈과 희망을 품고 하루 하루를 살았던 자취방이다.

 

 

 

좁은 골목길 한켠에 하얗게 질린 연탄을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눈이 오는 날이면 연탄재를 바닥에 깔아 미끄러지지 않게 사용했다.

 

 

 

봉투 붙이는 부업집

6.25 한국전쟁 이후 인구는 많아지고 일굴 땅은 부족하여 식량이 턱없이 부족할 때, 우리네 어머니들은 살림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해야 자식들을 키울 수 있었다.

 

 

 

뒤꿈치가 닳아 구멍난 양말과 고무신을 몇번씩 꿰매어 신었고, 밥 세끼 먹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던 시절...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 겨울이면 목욕은 할수조차 없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푸세식 화장실을 건너가야 다음 장소로 이동이 가능한데,,,
조카님이 길을 막고 엄청 급했던 표정으로 직접 재현까지 해주고 있다ㅋㅋㅋ

 

 

 

달동네의 풍경, 조명 빛이 밝은 달처럼 빛나고 있다.

 

 

 

문화관으로 올라가는 길

 

 

 

 

 

 

학교 앞에는 어김없이 문방구가 있었다.

 

 

 

문방구

캔디 책받침, 갱지 연습장, 구슬, 특히 불량식품인 쫀득이, 아폴로를 팔았던 어린 시절 추억의 문방구

 

 

 

번데기 장수와 풀빵장수

문방구를 지나 학교 가는 길에 어린시절 최고의 먹거리였던 번데기와 풀빵에 아이들은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중고책방을 지나면 국민학교에 도착하게 된다.

 

 

 

국민학교 (지금의 초등학교)

콧수건 달고, 고무신 신고, 책보따리 메고,,
교문을 들어서면 풍금소리에 맞춰 동요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난로 위에 올려놓은 도시락은 점심시간에 따뜻한 밥한끼가 되어주었고, 제일 아래에 있는건 밥이 눌어붙기도 했다.

 

 

 

동요시간이지만 아이들은 각자 제 하고싶은 것들을 하고 있는 모습이 재밌기만 하다.

 

 

 

장난치다 걸려서 벌을 서는 아이, 열심히 학급 게시판을 꾸미는 아이, 그때 그시절 친구들이 보고 싶다.

 

 

 

 

 

만화가게

1960 ~ 70년대 유일한 문화공간이었던 만화책방은 하굣길 필수 코스였다.

 

 

 

 

 

레코드점

통기타, LP판 등은 그때 그시절 청년 문화를 대표하는 것들이었다.
이곳은 레코드판과 악기 등을 파는 곳으로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전성기를 누렸으나 카세트 테이프의 등장으로 지금은 추억 속으로 사라져 볼수가 없게 되었다.

 

 

 

짐발이 자전거를 세워 놓은 지정벽보판
선거포스터와 지명수배자, 인기 있었던 복싱 포스터까지 붙일수 있는 벽보는 덕지덕지 모두 다 갔다 붙였다.

 

 

 

뽑기 아줌마

학교 골목길 모퉁이에는 뽑기와 달고나를 만들어 파는 아줌마가 노점을 차렸다. 하굣길 아이들은 참새방앗간처럼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한층을 더 올라가면 고교시절의 낭만을 느껴볼수 있는 교복점과 분식점이 있다.
교복 한벌로 3년을 버텼던 학창시절, 교복을 빨기라도 하면 교련복을 입고 가야했던 시절이다.

 

 

 

다양한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그때 그 감성으로 빠져들수 있다.

 

 

 

 

 

분식점

고교시절 학생들의 데이트 코스였던 분식점. 다양한 만남의 추억과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가며, 약속 장소로도 인기있던 장소였다.

 

 

 

학창시절 빛바랜 사진 한장이 소중한 이유는 그때 그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유일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추억의 교복체험

여학생 교복과 남학생 교련복을 입고 추억의 교복체험을 할수 있다.

* 무료 체험

 

 

 

상업학교 교실풍경도 재현되어 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는 모든 문서들이 타자기로 작성되었다.
테이프로 감긴 회초리가 가늘지만 매워 보인다.

 

 

 

아이들에게는 당시의 물건들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타자기도 쳐보고, 계산기 대신 주판도 튕겨 보고,,

 

 

 

훈장과도 같은 고교시절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고

 

 

 

예쁜 표지모델의 얼짱 각도는 이때도 있었나 보다.

 

 

 

중화요리 집을 지나 새마을회관으로 가는 길

 

 

 

근면, 자립, 협동이라는 슬로건 아래 대한민국의 힘을 보여주는 전시관
오른쪽 벽에는 당시의 새마을운동 벽화가 그려져 있다.

 

 

 

 

 

새마을회관

 

 

 

 

 

우리 국군의 병영생활과 내무반의 추억도 엿볼수 있다.

 

 

 

 

 

겨울철 난방때문에 서서히 더워지기 시작할 즈음 외부 휴게소인 헬기장으로 나가본다.
공중전화를 걸며 연기해주는 조카의 모습도 담아보고

 

 

 

추억속의 가전품들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어 조금은 거친 한국만의 빈티지 매력에 빠져볼 수 있다.

 

 

 

벨 H-13 헬리콥터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들여와 사용한 것으로 부상자 수송 역할을 담당했던 헬리콥터다. 일명 '잠자리 비행기'라고 불리었던 이 헬리콥터는 전쟁 후 민간용으로 개조하여 사용되다가 퇴역되었다.

 

 

 

4강 신화를 이룬 2002 월드컵 주역들의 흉상

 

 

 

삼륜차와 자전거를 개조한 자전거 오토바이

 

 

 

3층 역사관에는 한국정치 100년사 사료전이 전시되어 있다.

 

 

 

역사관 내부

 

 

 

고종 일가의 사진과 명성황후 등 고종, 순종 즉위기간 동안의 주요 사진들을 볼 수 있다.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김구 선생의 사진과 물건들도 꼭 감상해 보자.

 

 

 

역대 대통령의 자료들도 있고,

 

 

 

다양한 한국인의 얼굴도 만들어 놓았다.

 

 

 

역사관을 돌아 나가는 방향에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6.25 한국전쟁 때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역사란 우리 민족이 살아온 길이라면, 그리고 살아갈 내용이라면 현재는 과거에서, 미래는 그 현재에서 귀중한 교훈을 얻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 관람 구간인 추억의 소장품전을 둘러본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추억의 물건들로 가득하다.

 

 

 

전시관 내부 사방의 벽면을 빼곡하게 채운 물건들이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지하1층부터 지상3층까지 추억의 물건들과 옛 생활사를 둘러보며 달동네의 골목길 풍경까지도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련히 새겨지는 삶의 흔적들을 안은채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매표소 앞으로 다시 나오면 나가기 전에 화장실도 꼭 한번 들려보자.

 

 

 

한국근현대사박물관만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곳으로, 화장실 세면대 사진을 찍어오기는 처음인것 같다^^

 

 

 

많은 사진들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언제나 좋은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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