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성곽길 스템프투어] 스템프 위치, 기념품 수령방법

2021. 10. 29. 05:15+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걷기좋은길

[유네스코 세계유산 화성]
성곽길 스템프투어를 하다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 걷기좋은길
경기도 수원


Photographed by BayZer™

2021.10.24

 

 

 

화홍문 공영주차장

수원 화성에는 여러곳의 주차장이 있는데, 가장 넓고 주차비도 저렴한 화홍문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성곽길 투어후 야경까지 볼 계획이라 일일요금 3,500원이 적용됨.
* 주차요금 : 최초30분 400원, 10분초과마다 100원추가, 일일요금 3,500원

 

 

 

스템프투어 동선과 스템프 위치안내

화성행궁 - 수원화성박물관 - 행궁동벽화마을 - 수원전통문화관 - 장안문 - 화홍문 - 동장대(연무대) - 창룡문 - 남수문 - 팔달문 - 서장대 - 화서문 - 화서공원 - 장안문 - 화홍문주차장

스템프투어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화성행궁 관광안내소에서 스템프북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성곽길 투어 첫지점은 화성행궁이고, 투어 종료후 기념품 수령은 화서문 관광안내소에서 받아야하기 때문에 종료지점은 화서문으로 계획함.

 

 

 

화홍문 공영주차장에 주차후 일단 화홍문으로 갔다. 이곳에 화장실도 있으니 이용하면 되고, 스템트북을 받기 위해 화성행궁까지 900m를 걸어야 한다.

 

 

 

화성행궁 (제1경)

도착시간 11:51


행궁광장

화홍문에서 15분 ~ 20정도 소요된다. 휴일이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다.

 

 

 

관광안내소 앞 움직이는 관광안내소 트럭에서 스템프북과 지도 등 필요한 정보를 얻을수 있다.
* 스템프북 무료

 

 

 

화성행궁 매표소

화성행궁은 스템프투어 10곳중 유일하게 매표를 한후 안으로 들어가야 스템프를 찍을수 있다.
* 입장요금 : 어른1,500원, 군인청소년1,000원, 어린이(7~12세이하)700원
* 관람시간 : 09:00 ~ 18:00 (연중무휴)

 

 

 

지도와 스템프북, 화성행궁 입장권까지 모든 준비가 되었으니 먼저 행궁에서 스템프를 찍기위해 안으로 입장한다.
* 화성행궁 야간개장 : 2021.10.31일까지 (야간 입장권을 따로 매표하야 하는줄 알았는데 무료였음)
* 야간개장 관람시간 : 18:00 ~ 21:30

 

 

 

신풍루

행궁의 정문으로 조선 정조13년(1789년)에 수원읍의 관청 건물을 세우면서 그 정문으로 지었다. 처음에는 진남루라 부르다가 1795년에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면서 이름을 신풍루로 바꿨다.
신풍루는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고향인 풍패에서 따온 이름으로 제왕의 고향 풍패지향으로서 화성을 자리매김하고자 했던 정조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스템프박스 위치

신풍루를 지나 오른쪽에 있는 노거수로, 화성 성역 이전부터 있던 600년 이상 된 느티나무 옆에 스템프박스가 있다.
높이 30m, 둘레 6m의 이 느티나무는 화재로 인해 훼손되었으나 2003년부터 나무 살리기 작업을 통해 현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성곽길 스템프투어를 끝낸뒤에 야간개장까지 둘러볼 예정이다. 10월31일까지 개장된다고 한다.

 

 

 

 

봉수당

봉수당은 임금 행차시 화성행궁의 정전으로 쓰인 건물로 중심 4칸을 왕권을 상징하는 편전공간으로 연출하였다.
을묘원행시 이곳은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이 열린 공간으로 이때 정조는 '만년의 수를 받들어 빈다'는 의미의 봉수당이라는 당호를 지어 조윤형으로 하여금 현판을 쓰게 하였다.

 

 

 

 

봉수당에서의 진찬연

1795년 을묘원행시 진찬연 장면을 부분 연출한 공간으로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게 예를 드리고 있고, 여관들은 왕과 혜경궁 홍씨를 보좌하고 있다. 이날 진찬연에서 혜경궁 홍씨에게 12기의 소별미와 70가지의 음식, 42개의 상화가 바쳐졌다고 한다.

 

 

 

봉수당 내부

 

 

 

수원화성박물관 (제2경)

도착시간 12:33


본문이 길어지는 관계로 화성행궁 야경은 따로 포스팅하기로 하고, 다음 스템프 지점인 수원화성박물관으로 왔다.
화성행궁에서 직진길로 통닭거리를 지나 수원천 다리를 건너면 팔달구청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거중기

거중기는 정약용이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하여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수 있도록 고안한 장치이다. 지금의 기중기와 비슷한 도구로, 위와 아래에 각각 4개식의 도르래를 연결한후 그 끈을 물레에 감아 당기면 무거운 물건도 가볍게 들어 올릴수 있어 수원화성 축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
거중기 왼편에 오늘날의 크레인과 같은 기능의 녹로가 전시되어 있다.

 

 

 

스템프박스 위치

박물관을 등지고 우측에 위치해 있다. 거중기와 녹로를 본뒤에 박물관으로 들어서는 길 입구에 있으니 찾기는 쉽다.

 

 

 

정조 태실

2009년 박물관 개관 당시 정조의 태실을 재현하여 전시하였다. 태실은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하면 그 태를 봉안하던 곳이다.
정조가 태어난 다음해인 1753년 안태사 서명구에 의해 강원도 영월 계족산에 태실이 설치되었다. 국왕이 된 뒤 석물을 추가하는 가봉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민폐를 우려하여 후일로 미뤄지다가 결국 정조의 사후인 1801년에 시행되었다.
정조태실비의 앞면에는 "정종대왕태실"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는 정조 사후 처음 정해진 묘호가 '정종'이었기에 1801년 비를 세울때 그대로 따른 것이다. 1899년 대한제국이 수립되자 황제로 추존되면서 비로소 '정종'이 '정조'로 격상되었다.

 

 

 

행궁동 벽화마을

박물관을 나와 처음 행궁으로 갈때 걸어왔던 화홍문 방향으로 걷다보면 좌측길로 행궁동 벽화마을을 만나게 된다. 일정에 포함되지 않았던 곳이었는데 장안문으로 가는 방향에 있으니 한번 들러볼만한 곳이다.
행궁동 벽화마을도 따로 포스팅하기로 하고~

 

 

 

길을 따라 그대로 직진해 사진의 위치를 지나고, 장안문 큰도로까지 나간뒤 횡단보도를 건너 수원전통문화관으로 간다.

 

 

 

수원전통문화관 (제6경)

도착시간 13:16


행궁동 벽화마을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느라 시간이 꽤 흘러간거지 사실 거리상으로는 얼마되지 않는다.
장안문 전방에 한옥 몇채가 있는 곳인데 처음엔 어느 건물이 전통문화관인지 몰라 한참을 왔다갔다 했다.

 

 

 

수원전통문화관 입구

수원한옥이라는 명패와 수원전통문화관 이름이 작게 약도와 함께 하얀 담장에 붙어있다.

 

 

 

안으로 들어선후 좌측 풍경으로 넓은 잔디밭에 멋스러운 한옥들이 세워져 있고, 사진 찍는 사람들도 꽤 많은 곳이었다.
스템프박스는 사진 우측에 위치해 있다.

 

 

 

스템프박스 위치

예절교육관만 찾으면 입구에 있기 때문에 찾기가 쉽다. 이로써 도심에 있는 3곳을 완성했으니 이제 성곽길을 걸어볼 차례다.

 

 

 

장안문 (제5경)

도착시간 13:26


전통문화관에서 바로 보이는 장안문부터 성곽길투어를 시작해 본다.
장안문은 수원 화성의 북문으로 정조는 '장안'의 의미를 '북쪽으로 서울의 궁궐을 바라보고, 남쪽으로 현륭원(융릉)을 바라보며 만년의 편안함을 길이 알린다'라고 풀이했다.

 

 

 

스템프박스 위치

장안문 관광안내소 우측, 장안문 안내판 옆에 세워져 있다. 이제 스템프 4곳을 완성했다.
* 수원화성 관람은 유료지만 10월31일까지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 유료시 입장요금 : 어른 1,000원, 군인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

 

 

 

장안문 앞쪽의 모습

2층의 누각은 네 모서리 추녀가 길게 경사를 이루면서 용마루와 만나는 우진각 지붕 형태다. 길고 휘어진 목재를 구하기 힘든 조선시대에 우진각 지붕은 궁궐이나 도성의 정문과 같은 건물에만 쓰였다고 한다.
문루 처마 밑에는 다포라는 화려하고 정교하게 다듬은 받침 목재를 짜 맞췄는데, 다포식 건물은 18세기 이후 궁궐에서도 거의 백년동안 짓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강원도 출신의 승려 목수인 굉흡이 와서 건설을 도왔다.

 

 

 

옹성 위를 걷는중

 

 

 

북동적대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문 밖에 항아리 모양의 옹성을 만들었다. 장안문은 남문인 팔달문과 더불어 화성에서 가장 웅장하고 높은 격식을 갖춘 건물이다. 서울의 숭례문, 흥인지문과 함께 조선시대 성문을 대표하던 장안문은 한국전쟁때 폭격으로 파괴되어 1975년에 다시 복원하였다.
* 옹성 : 성을 지키기 위하여 성문 밖에 쌓은 작은 성

 

 

 

주차장에서 화홍문으로 걸어가면서 지나갔던 북동포루가 성곽으로 이어져 있고, 그 뒤로 방화수류정의 모습과 동북포루가 보인다.

 

 

 

수원팔색길

수원일색부터 팔색까지의 걷기길 중 수원팔색길에 해당하는 화성성곽길, 자랑스러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수원화성을 거니는 역사, 사적길이다.

 

 

 

북동포루

수원화성은 안쪽 성곽길에서 보는 모습과 바깥쪽에서 성곽을 바라보는 모습이 너무도 달라 어느때는 같은 건물인지 헷갈릴때도 있다.

 

 

 

성곽 밖에서 바라본 북동포루

 

 

 

화홍문 (북수문)

도착시간 13:39


다음 스템프 지점인 화홍문(북수문)에 도착했다. 화홍문에서 성곽으로 이어진 뒷쪽 건물은 동북각루의 정자 방화수류정이다.

 

 

 

북수문은 화성의 북쪽 성벽이 수원천과 만나는 곳에 설치한 수문으로 화홍문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스템프박스 위치

화홍문 안내소 옆, 스템프 5곳을 인증했다.

 

 

 

일곱 칸의 홍예문 위로 돌다리를 놓고 그 위에 누각을 지은 화홍문, 화홍문의 '화'자는 화성을 의미하고, '홍'자는 무지개를 뜻한다. 수문을 통해 흘러온 물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장쾌하게 떨어지는 모습인 '화홍관창'은 화성에서 꼭 봐야할 아름다운 경치로 손꼽힌다.

 

 

 

화홍문은 조선 헌종 14년(1848년)에 수문과 누각을 다시 지으면서 형태가 약간 달라졌다.
1932년에는 '수원명소보전회'를 주축으로 수원주민이 힘을 모아 10년전 홍수로 무너진 누각을 다시 지었고, 2016년에는 "화성성역의궤"를 근거로 창문을 복원했다.

 

 

 

누각은 본래 적군의 동태를 살피고 공격할수 있도록 만든 군사시설이지만 평소에는 주변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쓰였다.

 

 

 

동북각루 (방화수류정)

도착시간 13:51


징검다리를 건너 방화수류정 앞으로 가는 길

 

 

 

수원화성의 최고의 경치로 꼽히는 동북각루는 화성 동북쪽 요충지에 세워진 감시용 시설이다.
용두바위 위에 각루를 우뚝 세워 주변을 감시하고 화포를 쏠수있도록 한 군사시설이지만 아름다운 연못과 함께 있어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많이 쓰였다.

 

 

 

조선 정조 21년(1797년) 정월, 정조는 방화수류정에서 활쏘기를 하고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읊은 시를 지었다.

 

 

 

성곽길 투어를 종료후 해가 넘어갈 무렵에 담아본 방화수류정과 용연

 

 

 

방화수류정

정자의 별칭은 방화수류정으로, 정조는 이를 '현륭원이 있는 화산과 수원 읍치를 옮긴 땅 유천을 가리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방화수류정에는 임금을 위해 2층에 온돌방을 두고 창문을 설치했었지만 지금은 온돌방과 창문이 사라졌다.

 

 

 

 

동북포루

방화수류정 앞 연못에서 바라본 동북포루의 모습과 해질녘의 풍경

 

 

 

동북포루에서 바라본 동장대와 동북공심돈이 멋스럽게 서있다.

 

 

 

동암문

방화수류정에서 동북포루를 지나 동암문을 통해 성곽 밖으로 나왔다.
동암문은 화성 동쪽에 낸 비상 출입문으로, 암문이란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하여 적이 모르게 출입하고 군수품을 조달하던 문을 의미한다.

 

 

 

 

동암문에서 바라본 동북포루의 모습, 확실히 성곽 밖에서 보는 모습이 더 멋지고 웅장해 보인다.

 

 

 

동북공심돈의 모습

 

 

 

동장대 (연무대)

도착시간 14:17


동암문에서 성곽 밖으로 걸었더니 다음 스템프 지점인 동장대로 약간 더 돌아서 걷게 되었다.
동장대는 장수가 군사 훈련을 지휘하던 곳으로 '연무대'라고도 불린다.

 

 

 

화성에는 두 곳의 장대가 있는데 동장대는 평상시 군사들이 훈련하는 장소로 쓰고,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는 군사 훈련 지휘소로 썼다.
동장대는 벽이나 창문을 단 형태였으며, 가장 안쪽에 온돌방 한칸이 있었다.
정조는 동장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내려주는 호궤 행사를 베풀었다. 화성 축성이 마무리되던 시기인 1796년 8월19일, 감독관과 일꾼 등 2,700여명이 호궤에 참여했다.

 

 

 

스템프박스 위치

창룡문과 연무대는 다른 건물이지만 함께 묶어 스템프를 찍게 되어 있다.
위치는 연무대 관광안내소(매표소)에서 담장쪽 안내판 옆에 있다.

 

 

 

국궁체험장을 지나 창룡문으로 가는 길에 동북공심돈을 배경으로 자랑스런 "유네스코 세계유산 화성"을 담아 본다.

 

 

 

동북공심돈

화성 동북쪽에 세운 망루로 주변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시설이다. 공심돈은 속이 빈 돈대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성곽 중 화성에서만 볼수 있다.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절반 이상 무너졌었는데 1976년에 복원해 모습을 되찾았다.

 

 

 

창룡문 (제3경)

도착시간 14:26


제3경인 창룡문은 다른 성문들과는 달리 넓은 잔디광장에 위치해 있어 시야가 넓게 트이는 곳이다.
창룡문 스템프는 연무대 매표소에서 이미 찍었으니 패쓰~~

 

 

 

창룡문은 바깥쪽에서 보면 안쪽으로 휘어 들어가는 곳에 자리잡고 있어, 돌출된 좌우 성벽이 자연스럽게 성문을 보호하는 치성 역할을 한다는데, 바깥쪽으로 나가보지 않아 옹성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없어 아쉽기만 하다.

 

 

 

문 안쪽의 넓은 공터는 군사들의 훈련장으로 쓰였다.
오른쪽 열기구는 '플라잉수원'으로 열기구처럼 보이지만 헬륨가스로 부양하는 방식이다.
* 이용요금 : 성인 18,000원, 중고생 17,000원, 초등생 15,000원, 25개월~유치원 12,000원
* 수원시민 : 성인 15,000원, 중고생 14,000원, 초등생 12,000원, 25개월~유치원 10,000원
* 수원시민 할인은 탑승객 각각 개인별 신분증 제시

 

 

 

아직까지는 성곽길 자체가 계속 걷기 좋은길로 이어진다.
이렇게 성곽길에는 어디서나 자유롭게 드나들수 있는 방식이라 주요 지점마다 안내소에서 검표를 하게 되어 있다.

 

 

 

봉돈

봉돈은 봉화 연기를 올려 신호를 보내는 시설이다.
보통 봉화대는 높고 인적이 드문 곳에 두었으나 화성에서는 시야가 트인 동쪽에 설치해 화성행궁에서 바로 확인할수 있었다.

 

 

 

봉돈은 외벽과 내부, 계단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벽돌로 만든 화성의 대표적인 벽돌 건축물이다.
높게 쌓은 대 위에 횃불 구멍인 화두 다섯개가 있다. 평소에는 남쪽 끝에 있는 화두 한곳에만 연기를 올리고, 상황에 따라 연기의 숫자를 증가시켜 전쟁시에는 다섯 곳 모두 연기를 피웠다.

 

 

 

남수문 (제10경)

도착시간 14:50


동남각루에 도착하면 가파른 길을 내려가 남수문에 도착하게 된다.

 

 

 

남수문을 통과하는 문이 잠겨있고, 남수문 너머에는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 여기에서 성곽길이 잠시 끊기고 말았다.

 

 

 

스탬프박스 위치

남수문 계단을 내려와 우측 안내판 옆에 스탬프박스가 있다. 7번째 인증을 마친후~

 

 

 

남수문은 화성의 남쪽 성벽에 수원천 하류와 만나는 곳에 설치한 수문으로 아홉칸의 홍예를 두었다.
남수문의 바깥쪽은 홍예 위로 벽을 높이 쌓아 적이 넘어오지 못하게 하고, 안쪽에는 군사 수백명이 수문을 지킬수 있는 장포를 만들었으며 아홉개의 수문에는 철책을 설치하여 적의 침입에 대비했다.

 

 

 

남수문에서 다음 지점인 팔달문으로 가는 길은 수원남문시장을 지나야 한다. 휴일이라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남문시장 길에서 팔달문이 바라 보인다.

 

 

 

팔달문 (제9경)

보물 제402호
도착시간 15:05


수원남문시장을 통과하면 팔달문의 웅장한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팔달문은 화성의 4대문중 남쪽 대문으로 정조대왕과 당대 국왕들이 현륭원을 가기위해 통과하는 문이다.

 

 

 

1794년 2월28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15일에 완공하였다.
팔달문은 모든 곳으로 통한다는 사통팔달의 의미이며, 축성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에 보물 제402호로 지정되어 있다.

 

 

 

성문의 바깥에서 반원형의 옹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스탬프박스 위치

팔달문을 한바퀴 돌아 팔달문 매표소가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서면 된다.

매표소 좌측 뒤쪽 길에 스탬프박스가 보인다. 8번째 스탬프를 완성했다.

 

 

 

팔달문 매표소에서부터는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 계단을 올라야 한다. 팔달산으로 올라가는 길로 높이는 128m인 도심 속의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서는 동서남북으로 시야가 탁 트여 수원시 전체를 시원하게 조망할수 있다.

 

 

 

남포루

팔달산 남쪽 기슭 경사지에 지은 화포를 갖춘 시설로 화성의 5곳 포루중 남포루가 가장 규모가 작다. 여기서부터는 성벽쪽 계단으로 올라 갈수도 있고, 산책로로 걸을수도 있다.

 

 

 

이 계단은 서남암문까지 이어진다.
학창시절에 한번 왔었던 기억으로는 이렇게 잘 정비된 길이 아니라 험한 산길이어서 등산하는 기분으로 올라갔던 기억이 난다.

 

 

 

서남암문

암문중 유일하게 문 위에 군사들이 머무는 포사를 세웠다. 이곳을 통해 서남각루(화양루)로 갈수 있다.

 

 

 

서남암문을 지나면서는 평지길이 이어진다.

 

 

 

서포루와 효원의 종각을 지나 서장대 매표소를 통과하면 팔달산의 정상 서장대에 도착하게 된다.

 

 

 

서장대 (제8경)

도착시간 15:34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자리잡은 군사 지휘소로 시야가 트여 있어 멀리 용인 석성산 봉화와 현륭원 입구까지 한눈에 살필수 있었다고 한다.
서장대의 아래층은 장수가 머물면서 군사 훈련을 지휘하고, 위층은 군사가 주변을 감시하는 용도로 썼다.

 

 

 

스탬프박스 위치

서장대 앞 세계 이정표 옆에 위치해 있다. 화성 스탬프투어중 가장 힘든 구간인 서장대 스탬프를 획득했다.
난간 앞으로는 수원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위층 처마 밑에 걸린 '화성장대'와 '시문' 현판은 모두 정조의 작품이다.
1795년 군사훈련인 성조가 끝난뒤 정조는 '화성장대' 현판의 글씨를 직접 쓰고 만족스럽고 기쁜 마음을 시로 표현했다.
화성에서 유일하게 정조가 지은 두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서노대

서장대 뒤쪽에 있는 서노대는 기계식 활인 노를 쏘기 위해 높게 지은 시설로 군사지휘소인 서장대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노대는 적의 동향을 살피고 깃발을 이용해 적의 위치를 알리는 용도로도 쓰였다.

 

 

 

이제는 내려가야 하는 길이다. 화서문까지 계속 내리막길이 이어져 걷는 속도도 빨라진다.

 

 

 

서포루

팔달산 중턱에 설치한 화포를 갖춘 시설 서포루를 지난다.

 

 

 

서북각루

팔달산으로 오르는 경사지에서 성벽이 휘어진 곳에 자리잡아 서북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감시용 시설 서북각루의 가을.
바깥 성벽에는 화서공원이 있으며, 서북각루 아래로 억새가 하얗게 피어 장관을 이룬다.

 

 

 

화서문 (제7경)

보물 제403호
도착시간 15:54


서북각루에서 마지막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화서문에 도착하게 된다. 다른 성문과 달리 바깥 옹성 한쪽이 끊어져 있는 모습이다.

 

 

 

스탬프박스 위치

화서문 관광안내소 앞에 위치해 있으며, 마지막 스탬프까지 완성했으니 이곳에서 기념품을 바로 수령하면 된다.
* 스템프 10곳 인증 : 머그컵 또는 책갈피중 선택할수 있음.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어 있는 화서문은 화성의 서문이다. 화성의 서쪽이라는 뜻이지만 서쪽에는 팔달산이 있어 실제 위치는 서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서북공심돈과 화서문

화서문 문밖으로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어 주변을 감시하기 위해 높다란 서북공심돈을 함께 세웠다.
장안문과 팔달문에 비해 격을 낮추어 석축의 규모는 작지만 창건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18세기 건축기술을 보여준다.

 

 

 

화서공원

서북각루에서 보았던 화서공원의 억새풍경을 몇장 담기 위해 잠시 들려본다.

 

 

 

서북각루 아래로 억새가 하얗게 피었다.

 

 

 

서북각루의 억새

 

 

 

서북공심돈

보물 제1710호로 지정된 서북공심돈은 적의 동향을 살핌과 동시에 공격도 가능한 시설로 수원 화성에서만 볼수있다. 내부는 전투에 편리한 구조를 갖추었으며 계단을 통해 오르내렸다.
정조 21년(1797년) 1월 화성을 방문한 정조는 서북공심돈을 보고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든 것이니 마음껏 구경하라"며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고 한다.

 

 

 

북포루

북포루는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수 있도록 만든 시설로, 군사들이 머물수 있도록 누각을 지었다.
화서문부터는 성곽 밖으로 걷고있는 중이다.

 

 

 

세계유산축전이 10월24일, 방문한 오늘 행사가 종료됐다.
하루만 일찍 왔어도 좋았을텐데~

 

 

 

장안문

걷다보니 어느새 성곽길을 시작했던 장안문에 도착하게 되었다. 성곽 밖에서 보니 둥그런 옹성 때문인지 더욱 웅장해 보인다.

 

 

 

화성의 모습이 축소되어 입체적인 모형으로 제작된 조감도를 보며 이 성곽길을 완주했다는 사실이 세삼 뿌듯해진다.

 

 

 

마치며...

총 거리10.6km, 3시간 56분 소요 (촬영, 휴식시간 포함)
화성행궁과 행궁동 벽화마을에서 보낸 시간과 거리가 포함되어 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매일매일 행복한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