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제일의 궁궐을 만나다]
경복궁 #1 광화문과 흥례문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 종로
Photographed by BayZer™
2012.03.03
경복궁은 조선 왕조를 대표하는 제일의 궁궐이다.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가 나라의 기틀을 새롭게 다지기 위해 가장 먼저 건립한 궁궐로서,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규모가 크고 격식도 매우 엄중하다. 찬란한 문화유산인 조선왕조 제일의 궁궐, 경복궁 (사적 제117호)을 만나본다.
광화문 (光化門 Gwanghwamun)
광화문 안내도
궁궐의 바깥 경계에 높은 담장을 쌓았고, 담장의 동서남북 네곳에 대문을 만들었다. 동쪽에는 건춘문, 서쪽에는 영추문, 남쪽에는 광화문, 북쪽에는 신무문을 두었다.
광화문 (光化門 Gwanghwamun)
우리에게 친숙한 광화문은 경복궁의 남쪽문으로 여름과 불을 상징하는 명칭이며 전통적인 오행설에서 유래했다. 경복궁의 정문이다.
다른 궁궐들의 정문과는 달리 돌로 높은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중층구조의 누각을 세워서 마치 성곽의 성문과 같은 격식으로 장대하게 지어졌다.
광화문 현판
1395년(태조4년) 9월 창건당시 정도전이 '사정문'이라 이름 지었으며 '오문'으로 불리기도 했었는데, 1425년(세종7년)에 와서 집현전 학사들에 의해 지금의 광화문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광장에서 본 광화문
광화문은 임진왜란 등을 겪으면서 대부분 소실된후 270여년간 그모습을 되찾지 못했다가 고종 2년(1865년)에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재건때 다시 옛모습을 되찾았다. 지금의 광화문은 원래 있던 제자리를 찾아서 다시 복원한 것으로 2010년 65주년 광복절을 맞아 현판제막식과 경축식이 열렸다.
안쪽에서 본 광화문
광화문은 세 개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다른문 보다 높고 큰 중앙의 홍예문으로는 왕이, 좌우의 홍예문으로는 왕세자와 신하들이 출입하였다. 사진에서 보듯이 중앙의 홍예문 천정에 보면 주작도가 있으니 광화문에 가면 잊지 말고 꼭 찾아보길 권한다.
광화문 주작도
광화문에서 바라본 흥례문의 모습, 천장의 화려한 주작이 마치 흥례문을 향해 날아가는 듯 하다.
주작도
주작은 사방위 중 남쪽 방위를 지키는 신령스럽고 상서로운 새를 말하는데, 역시 아름다움을 넘어 그 기운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개방시간에 맞춰 일찍 찾아가면 앞에서 지키는 수문군사가 없기 때문에 부담없이 자유롭게 찍어올수 있다.
거북과 천마
광화문 좌우의 홍예문 천정에도 그려져 있는데, 왼쪽 홍예문에는 거북을, 오른쪽 홍예문에는 천마를 그려 넣었다.
해태상
광화문 좌우에 호랑이처럼 생긴 조각상 ‘해태’는 상상의 동물로 해치라고도 불렀다. 지금은 해태상이 광화문 바로 앞 좌우에 있지만 원래는 광화문 앞에서 광장쪽으로 대략 50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궁궐영역이니 궁궐에 들어오는 사람은 가마나 말에서 내린 후에 걸어서 경복궁에 들어가야 함을 알렸다고 한다.
누각 아래의 해태상
홍예문의 벽사상
광화문의 3개 홍예문 이맛돌 한가운데에는 악귀를 물리친다고 믿는 상상의 동물인 벽사상이 조각되어 있다. 몸은 용처럼 보이나 얼굴은 뿔이난 귀면의 모습을 하고 혀를 내밀고 있어 익살스럽게 표현됐다.
도시와의 공존
빌딩숲으로 둘러싸인 서울에 이렇게 멋진 우리의 자랑스런 궁궐이 있다는것도 하나의 축복이다.
수문장 교대의식 (The Ceremony of Gate Guard Change)
조선시대 수문장은 흥인지문, 숭례문 등 도성문과 경복궁 등 왕이 생활하는 궁궐의 문을 지키는 책임자였다. 수문장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서 광화문을 열고 닫으며 근무교대가 이루어졌다.
취타대
오전 10시가 되어 대북소리가 울리면 취타대의 입장으로 수문장 교대의식이 시작되며 광화문과 흥례문 사이에서 진행된다. 이날은 협생문쪽에서 취타대가 입장했다.
취타대의 태평소, 나발, 향피리 등이 내는 국악의 소리가 경복궁 구석구석까지 울려퍼진다. 궁에서 듣는 연주라 그런지 여느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든다.
수문장 교대의식
대북이 울리면 기수 및 수문장과 수문군사들이 입장을 하고 잠시 머무르다가 광화문쪽으로 이동한후 수문군이 배치하게 된다. 경복궁에서는 수문장 제도가 정비되는 15세기 조선 전기를 시대배경으로 하여 당시 궁궐을 지키던 군인들의 복식과 무기, 각종 의장물을 그대로 재현하여 매시간 정각에 시행하고 있다.
광화문 수문군사들
수문군사들이 궁문을 지키는게 임무라고는 하지만 이것도 일종의 이벤트인데, 관람객들이 옆에서서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고, 근거리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수문장 교대의식 :
오전10시 ~ 오후 3시까지 (매시간 정각, 화요일 휴무), 15분 소요
오후4시에는 수문장 퇴장의식만 진행
12월 ~ 2월, 7월 ~ 8월은 출연인원을 축소해서 운영, 혹한, 폭염, 우천, 폭설시 파수의식(지킴)으로 전환
문의 : 02 - 3210 - 1645~6
협생문 (協生門 Hyeopsaengmon)
광화문을 들어서면 흥례문의 동쪽 회랑에 딸린 문으로 수문장 교대의식이 있을 때 이곳으로 수문군사들이 입장을 한다.
용성문 (用成門 Yongseongmun)
광화문에서 서쪽 회랑에 딸린 문으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갈 수 있다. 협생문과 함께 수문장 교대의식때 출입문으로 사용된다.
광화문 야경
광화문광장에서 본 광화문 야경
흥례문 (興禮門 Heungnyemun)
흥례문의 원래 이름은 '예(禮)를 널리 편다'는 뜻의 '홍례문'이었는데, 흥선대원군이 중건하면서 흥례문으로 고쳤다고 한다.
흥례문 (興禮門 Heungnyemun)
흥례문은 중층 목조건물로 앞면 3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누각에는 취두와 함께 위아래층 모두 추녀마루에 용두를 두었고, 그 앞으로 7개의 잡상을 배열했다.
흥례문 현판
흥례문 현판은 서예가 소헌 정도준이 쓰고 중요무형문화재 각자장 기능 보유자 철재 오옥진이 새겼다고 한다.
복원된 흥례문
흥례문은 1916년 일제강점기때 조선총독부를 지으면서 주변 행각과 함께 모두 파괴되고 말았다.
광화문, 흥례문 등이 흔적도없이 사라졌고, 근정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커다란 콘크리트 덩어리인 조선총독부가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후 총독부 건물이 철거되면서 85년만인 2001년 10월 26일에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되었다. 당시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을 때 원래의 지반보다 1.5m 높게 지었기 때문에 복원때는 경복궁의 본래 모습대로 1.5m의 땅을 파내고 근정문과 같은 높이로 하였다고 한다.
흥례문 답도
근정전의 것처럼 이것도 봉황인지는 잘모르겠다. 주위에는 당초문을 그려넣었다.
흥례문 서행각
2개의 통로로 지어졌으며 북쪽 끝지점에 유화문과 기별청으로 이어진다
행각에서 경복궁을 설명하시는 선생님, 열심히 받아적는 아이들의 역사공부가 한창이다.
유화문과 기별청
서행각의 북쪽 끝지점에 서쪽 궐내각사와 빈청으로 출입하던 팔작지붕의 유화문이 있고, 그옆에 조그맣게 기별청이 보인다.
유화문 (維和門 Yuhwamun)
흥례문 일곽에서는 조회뿐만 아니라 국문이나 교서반포 등이 이루어졌으므로, 궐내각사와 빈청의 관원들이 원활히 움직일 수 있는 문이 필요했고 그 역할을 유화문이 한 것이다.
유화문 현판
흥례문의 것과 같이 정도전이 쓰고 오욱진이 새겼다.
기별청 (奇別廳 Gibyeolcheong)
유화문의 우측으로 보이는 맞배지붕의 조그만 건물이 기별청으로 소식을 알린다는 의미이다. 승정원에서 그날의 일을 아침마다 적어서 알리는 관보를 기별이라 불렀다.
흥례문 동행각
흥례문의 동쪽에 있는 행각으로 북쪽끝에는 덕양문이 있으나 굳게 닫혀있어 통행할 수는 없다.
금천과 어구
흥례문 영역의 가운데에는 궁궐안에 흐르는 개천인 금천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도록 한 어구가 있고, 어구의 중앙에 영제교라는 다리가 놓여 있다. 실제로 물은 흐르지 않고 있었다.
흥례문과 영제교
많은 관람객들이 흥례문을 들어와 영제교를 건너고 있다.
금천과 영제교
서쪽 행각에서 바라본 금천의 모습으로 좌측은 근정문이고 우측은 흥례문이다. 근정문에서 의례를 거행할 때는 영제교 북쪽, 즉 다리 건너편으로는 정2품 이상이 서고, 남쪽으로는 정3품 이하가 자리를 잡았다. 영제교가 신분의 구분선이 되었다.
근정문과 영제교
서행각 남쪽부분에서 본 모습. 영제교 또한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를 만들면서 해체되어 수정전 뒤뜰과 근정전 동쪽으로 옮겨졌다가 2001년 10월26일 흥례문, 유화문과 함께 원래 자리로 복원되었다.
영제교
영제교 가운데로는 임금이 다니는 어로가 있으며, 총길이는 약 13m, 폭은 10m이다.
영제교의 석축에 천록이 조각되어 있고, 다리의 양끝 네곳에는 석수가 있다.
천록
영제교 돌다리의 양옆에는 금천을 내려다보는 돌짐승이 모두 네 마리가 조각되어 있는데 천록이라는 전설속의 신령스러운 짐승이라고 한다.
한껏 웅크린 모양으로 배를 깔고 누워있는 모습이 능청스럽게 보인다.
1박2일에서 유홍준 교수가 소개한 건축가의 유머가 담긴 '메롱'하며 혓바닥을 내밀고 있는 유머스런 천록을 찾아보자.
네마리 천록의 다양한 모습
영제교의 석수
영제교의 양끝 네곳 엄지기둥에 돌로 조각되어 세워져있는 석수.
흥례문 야경
윗사진은 근정문에서 바라본 흥례문으로 도시의 빌딩숲을 감싸 안은듯한 모습이다.
다음은 근정문을 통하여 근정전으로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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