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제일의 궁궐을 만나다]
경복궁 #2 근정전과 근정문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 종로
Photographed by BayZer™
2012.03.03
경복궁 현황도
근정문 (勤政門 Geunjeongmun)
근정문 (勤政門 Geunjeongmun)
영제교를 건너면 바로 앞에 있는 문으로 왕과 신하가 만나는 조참행사를 행하였던 곳이다. 1395년 경복궁이 처음 지어진 이래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면서 수많은 수모를 겪었다.
근정문 현판
근정문의 이름은 정도전이 지었으며, 현판은 형조판서와 홍문관제학, 예조판서, 수원유수 등 주요 관직을 두루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인 신석희가 썼다.
근정문 답도
근정문으로 오르는 계단 중앙에 답도를 두었으며 답도 옆으로는 디딤돌을 3층으로 하고 길게 엎드려 있는 해태로 마무리를 하였다.
답도의 봉황문
답도에는 봉황문을 새겨 넣었으며 전면에는 당초문을 넣어 어계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만들었다.
근정문과 일화문
흥례문에서 보면 근정문은 북쪽행각에 있지만, 근정전을 둘러싼 행각에서는 남쪽 행각의 가운데에 근정문이 있는 셈이다. 그 우측에 일화문이 있다.
일화문 (日華門 Ilhwamun)
근정문 우측에 딸린 일각문으로 평소에 닫아두는 근정문을 대소신료들이 통과할 때 이용했다. 근정전 앞 품계석중 우측에는 무관이 도열하는 연유로 일화문은 주로 무관이 출입하는 문으로 사용됐다.
근정문과 월화문
월화문은 근정문의 좌측에 딸린 일각문으로 문관이 사용하는 문이었으며 근정전 앞 품계석도 좌측에는 문관이 서게되어 있었다.
월화문 (月華門 Weolhwamun)
아무래도 무관보다 문관을 더 우대했던 선비의 나라였기에 좌측의 월화문 통행이 더 우월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월화문을 통해 근정전의 일부분이 보인다.
근정문에서 본 근정전
근정문은 출입을 위한 단순한 문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데, 정종, 세종, 단종, 세조, 성종, 명종, 선조 등 총 일곱 임금의 즉위식이 거행되기도 했으며,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 송씨가 이곳에서 책봉식을 가졌다.
근정문과 행각 (보물 제812호)
지금 남아있는 조선시대 왕궁 정전의 남문 중 하나밖에 없는 2층 건물이라고 한다. 근정문 좌우에는 행각으로 연결되어 근정전을 사방으로 에워싸고 있다.
서행각
근정문에서 좌측으로 길게 뻗어 근정전을 에워싸고 있다.
근정전 서쪽에 있는 행각으로 안쪽 통로와 바깥쪽 통로로 나뉘는데,
안쪽 통로는 건물간의 복도역할 뿐만 아니라 궁내 건물들의 격을 높이고 전각을 호위하는 역할을 했다.
동행각
서행각과 마찬가지로 근정문으로부터 우측으로 길게 뻗어 근정전을 에워싸며 사각형을 이루는데 근정전의 북쪽 행각에 있는 사정문에서 만나게 된다. 북행각을 제외하고는 모두 2개의 통로로 되어있어 가운데에 중심주를 세웠다.
중간 부분에 융문루의 출입구가 보인다. 이곳으로 나가면 동궁영역으로 갈 수 있다.
동행각과 서행각은 각각 44칸씩 되어있으며 남쪽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3층으로 구성되어 북쪽이 더 높게 되어있다.
사진의 왼쪽으로 길게뻗은 동행각 지붕을 보면 북쪽으로 갈수록 더 높아지는걸 볼 수 있다.
행각의 주련
근정문에서 동쪽으로 연결되는 행각 기둥에는 13개의 주련이 붙어있다. 주련은 좋은 글귀나 시 등을 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 붙이는 것을 말하며 보통 하얗게 만든 판자에 연꽃이나 당초무늬를 새기고 그 안에 글귀를 적는다.
立愛敦親 敎民以睦 (입애돈친 교민이목) : 사랑을 확립하고 친족끼리 돈독함으로써 백성들을 화목하게 하고,
好學樂善 爲世所宗 (호학낙선 위세소종) : 배움을 좋아하고 선을 즐김으로써 세상 사람들이 받드는 바가 된다.
序昭六親 殷道隆盛 (서소육친 은도융성) : 질서가 육친에 밝으니 은나라의 도가 융성하고,
德推九睦 治堯?? (덕추구목 치요협화) : 덕이 구족에 미치니 요 임금의 정치가 화목하도다.
列卿尙書 落花低春酒 (열경상서 낙화저춘주) : 구경과 상서들은 떨어지는 꽃 아래에서 봄 술을 마시고,
王孫公子 芳樹下淸歌 (왕손공자 방수하청가) : 왕손과 공자들은 아름다운 나무 아래에서 청아한 노래를 부르도다.
悍禦宗邦 維城維翰 (한어종방 유성유한) : 나라를 막고 지키는 것은 성과 중신이며,
夾介王室 之屛之藩 (협개왕실 지병지번) : 왕실을 감싸고 보호하는 것은 병풍과 번이로다.
休戚與同 忠愛?篤 (휴척여동 충애미독) : 기쁨과 슬픔을 더불어 함께하면 충성심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돈독해지며,
恬嬉是戒 文武俱全 (염희시계 문무구전) : 편하게 놀고 즐기는 것을 경계하면 문과 무가 두루 온전해진다.
天漢殿高 孰不欽敬 (천한전고 숙불흠경) : 천한전 드높으니 그 누가 공경하지 않으리요.
春秋門近 地是淸要 (춘추문근 지시청요) : 춘추문 가까우니 청요의 자리로다.
完矣美矣 公子謂善居 (완의미의 공자위선거) : 완전하고 아름다움은 공자 형(荊)의 훌륭한 살람살이를 얘기하는 것이라네.
* 제일 처음 것은 찾을수 없어 한자만 구해서 입힌 것이고, 마지막 구절은 내용상 짝이 없어 분실된 듯 보인다.
근정문의 야경
경복궁 야간관람 기간에 촬영한 근정문
근정전(勤政殿 Geunjeongjeon)
근정전(勤政殿 Geunjeongjeon)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은 왕의 즉위식이나 큰 조회와 같은 국가적 행사, 또는 사신을 맞이하던 곳으로 궁궐 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건물로 면적도 가장 넓게 차지하고 있다. 사방에 행각을 둘러 넓은 마당을 만들었다.
전각은 2단의 월대 위에 세워 더욱 웅장해 보인다. 월대 주위에는 긴 댓돌을 돌리고 석난간을 세웠으며 각 난간의 엄지기둥에는 12지상을 방위에 맞게 조각하여 지키게하였다. 정면 5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 중층건물로 국보 제223호로 지정되어 있다.
근정전은 큰 행사 때 사용했던 만큼 국가와 왕을 표현하는 상징물이었다.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뒤 1867년 (고종4년)에 흥선대원군이 136년 만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근정전의 현판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잘 다스려진다’는 뜻이 담겨 있는 근정전의 이름은 삼봉 정도전이 지었다. 현판은 경복궁을 중건할 때 다시 만들어진 것으로, 성균관 대사성을 지내고 도승지 등 높은 관직에 있었던 문신인 이흥민이 썼다.
하월대와 상월대의 답도
2단으로 된 월대의 정면 중앙계단에 답도를 위, 아래로 두었다. 답도 양옆으로는 임금만 내디딜수 있는 디딤돌 어계를 놓고, 그 옆의 소맷돌에는 길게 엎드려있는 형상의 해태를 배치했다.
봉황문과 당초문
답도는 디딤돌 사이에 비스듬히 끼워져 있으며 그 위에는 구름속에서 노니는 봉황과 각각 모서리 귀퉁이에는 당초문을 넣었다. 답도 전면에도 문양을 넣어 양 옆의 어계와 문양이 어울리도록 했다.
근정전 내부
근정전 실내는 관람객이 볼 수 있게 열어 두었는데 전면 우측문에서 바라본 내부이다. 가운데에 어좌가 보이고 바닥에는 사각 전돌이 깔려있다.
근정전의 천장
전면 좌측문에서 천장으로 올려다 본 모습인데 그 웅장함과 섬세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근정전에는 다른 건물에서는 보기 힘든 귀고주를 두었는데, 귀고주는 근정전의 네 귀퉁이에서 2층으로 관통하여 연결하는 중심기둥을 말한다. 2001년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파손된 귀고주 교체공사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그 하중을 견뎌낼 재목을 구하지 못해 결국 북미산 홍송으로 교체되었다는 안타까운 내력을 가지고 있다.
어좌와 일월오봉도
정면에서 바라본 어좌의 모습. 뒷면 중앙칸 안두리기둥 사이에 보좌를 마련하고 그 위에 어좌를 설치했다. 어좌 뒤로 다섯 산봉우리가 그려진 일월오봉도가 보인다.
일월오봉도
해와 달, 다섯 산봉우리, 붉은 소나무, 폭포가 그려져 있는 이 그림은 왕권의 상징으로 왕의 초상이 있는 어진 주변이나 왕이 있는 자리에 펼쳐 놓았다고 한다.
좌측에서 본 실내와 천장
근정전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던 보개천장의 용이 좌측면에서는 너무도 잘보인다.
정면에서 실내와 어좌만 관람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이 많은데, 잊지 말고 옆에서 꼭 한번 올려 보도록 하자.
이룡희주
황금빛으로 감싼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가운데 두고 희롱하는 '이룡희주'다. 보통 용의 발톱은 3개에서 5개가 상식인데 이룡희주는 매우 드문 경우로 발톱이 무려 7개나 되는 칠조룡이다.
중국의 자금성이나 대만에서는 발톱이 5개짜리 용이 많이 발견된다고 하는데 이는 중국 황제보다 우리 위상을 높게 매긴 기백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경복궁 재건 당시 왕권강화와 함께 황제의 지위를 보여주기 위해 흥선대원군이 설치했다 한다.
근정전 내부
화려하지만 무게감 있게 장식된 근정전의 내부
측면에서 바라본 근정전
2단으로 된 월대위에 세워져 더욱 웅장해 보인다.
용두와 잡상
지붕 맨 위 좌우 끝에 있는 장식기와인 취두가 있고, 취두 아래 용두가 있는데, 모두 용의 모양을 하고 있다.
용두 앞으로 나란히 줄지어 있는 것들이 잡상인데, 잡상은 추녀마루에 올리는 토우들로 대당사부(삼장법사), 손행자(손오공), 저팔계, 사화상(사오정)등 '서유기'에 나오는 인물을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지붕위의 잡귀를 막는다는 의미에서 세워진 것으로 근정전에는 7개씩 세워져 있다. 경회루에는 경복궁의 건물 중에서 가장 많은 11개의 영험한 잡상들로 구성되어 있다.
근정전의 처마
사진에서 보듯 모든 전각에는 그물이 쳐져있는데 그 용도는 새가 앉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새집을 짓거나 행여나 새똥이라도 묻으면 큰일일테니...^^ 그물이 없는 곳은 바늘처럼 생긴 침을 세워둔 곳도 있다.
4신상과 12지상 배치도
근정전 상월대의 계단 엄지기둥에는 상상의 동물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동서남북으로 넣어 지키게 하였고, 12지신은 하월대와 상월대의 난간 엄지기둥에 재미있는 모양으로 조각되어 있다.
각각은 모두 쌍으로 배치되어 있다.
주작
4신상중 남쪽의 수호신으로 사람이 지켜야할 예(禮)를 상징한다.
처음엔 12지신의 닭인줄 알았는데, 남쪽방향에서 닭을 보게되면 닭보다는 더 품위있어 보인다.
청룡
동쪽의 수호신으로 사랑과 육성을 뜻하는 인(仁)을 상징한다.
현무
북쪽의 수호신으로 냉철하고 유현한 지혜를 나타내는 지(智)를 상징한다. 거북과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백호
서쪽의 수호신으로 엄격한 기준에 따라 시비를 가리는 의(義)를 상징한다. 엄청 귀여운 백호다.
월대의 12지상
제일 남쪽에 말조각이 있어 정오를 나타내는 오시 즉 12시의 방향이며, 제일 뒷쪽 북쪽 방향은 바로 자시의 의미인 쥐가 조각되어 있다. 이처럼 12지상은 오행의 원리에 따라 배치되었는데, 소와 호랑이 등의 위치를 보면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
사진 순서는 하월대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가면서 정리했다.
서수와 12지상
근정전 전면의 월대 양끝과 후면의 월대 양끝에는 서수와 서수가족이 자리잡고 있다.
투구를 쓴듯한 모습의 서수는 12지상만큼이나 친근해 보인다. 툭 불거져 매서워 보이는 눈과, 밖으로 돌출된 어금니를 보면 금방이라도 으르렁거릴듯한 표정이지만, 가족의 모습을 보면 부부의 품으로 파고드는 새끼의 모습은 자연스레 미소를 머금게 만든다.
12지상의 용을 찾다가 끝내 못찾았는데 아마도 4신상의 청룡으로 인해 생략된 듯 하다.
12지상 가운데 개와 돼지도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문헌에 나와있지 않아서 정확한 설명이 어렵다고 하는데, 뭐 대충은 알것같기도 하고... 뱀의 모양이 가장 특이했던 것 같다.
삼도
근정문에서 근정전까지 이르는 길이 3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 길을 삼도라고 부른다.
가운데 길은 왕만이 밟을 수 있는 길로 다른 길보다 조금 더 높게 조성되어 있다. 왕의 기분을 느껴보며 삼도의 가운데 길을 걸어보자.
품계석
앞마당에 두줄로 세운 품계석은 벼슬아치들이 도열하는 기준이 되었다.
왕의 즉위나 외국 사신접대 등의 큰 행사 거행시 신하들은 마당에 놓여진 품계석에 따라 정해진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삼도와 나란히 직선으로 배열되어 있다.
좌측 바닥에 박혀있는 차일고리는 의례거행시 천막이나 그늘막이를 설치할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청동향로
근정전 기단 상부에는 정면 좌우에 각각 청동향로를 배치하였다. 근정전에서 의식을 거행할 때 왕이 근정전으로 오르면 청동향로 양쪽으로 향을 피워 올렸다고 한다. 청동향로는 향을 피우기 위한 목적뿐만 아니라 향로 자체가 왕을 상징하는 솥. 즉 정을 의미하였다.
드므
상월대의 동,서측 계단으로 내려가면 그 옆에 무쇠로 만든 거대한 물그릇인 드므가 있다.
드므는 불기운을 막기 위한 용기로써 안에는 물을 가득 넣어두었다고 한다.
실제 불이 났을 때 불을 끄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화마가 물에 비친 제 모습에 놀라 도망가게 함으로써 화재예방을 위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한다.
마당의 박석
넓은 마당 전체에 거칠게 다듬어진 돌을 깔아 가장 상징적인 공간을 이루었다.
1박2일에서 유홍준 교수가 소개한 내용을 보면 경복궁이 가장 아름다울 때가 비가 오는 날이라고 했다.
빗물이 박석 사이를 찾아 흐르며 길을 만드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고~~
융문루 (隆文樓 Yungmunru)
동행각의 남단으로부터 17칸, 18칸째에 융문루가 위치해 있으며 외부로 돌출되어 있다. 정전 영역밖으로 출입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이 융문루는 왕과 왕세자, 궐내각사의 신료들이 보던 책을 보관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으로 나오면 동궁으로 갈 수 있다. 서행각에는 융무루가 있다.
동행각 남단 귀퉁이에서 바라본 근정전
근정문과 근정전
경복궁 야간관람때 담은 근정전의 야경
동행각 야경
근정전 야경
다음은 근정전과 일직선상에 있는 사정전으로 가기전에 동선이 약간 애매한 위치에 있는 동궁영역을 먼저 들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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