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8 경회루, 함화당과 집경당

2012. 3. 23. 22:02+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문화유산 답사기

[조선 왕조 제일의 궁궐을 만나다]
경복궁 #8 경회루, 함화당과 집경당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 종로

Photographed by BayZer™

2012.03.03

 

 

 

경복궁 현황도

 

 

 

경회루 (慶會樓 Gyeonghoeru)

 

경회루는 왕실의 큰 연회를 베풀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으로 1867년에 재건되었다.

 

 

경회루 (慶會樓 Gyeonghoeru)
경회루는 침전영역 서쪽에 위치한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으로, 정면 7칸, 측면 5칸의 중층건물이다. 경복궁 창건 당시는 작은 누각이었던 것을 1412년 (태종12년)에 크게 연못을 파고 지금과 같은 규모로 만들었다.

 

 

경회루 (국보 제224호)
성종 때는 건물이 기울어져 다시 고쳐 지으면서 돌기둥에 용과 꽃 장식을 하여 화려하게 치장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867년 (고종4년)에 중건된 것이다.

 

 

경회루 현판
건립 당시의 글씨는 태종의 장남이자 세종의 맏형으로 당시 세자였던 양녕대군이 썼으나, 지금의 현판은 1867년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시와 글씨에 뛰어났던 위당 신관호가 쓴 것으로 옛 서법에 따랐기때문에 루(樓)자가 정자체와 달라보인다. '경회'는 '경사스러운 연회'를 뜻한다.

 

 

경회루는 바닥면적 933㎡(282평)으로 현존 목조 건물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2층 마루는 3겹으로 구성되었는데 중심 3칸은 천지인(天地人)을, 그 바깥 12칸은 1년 12달을, 가장 바깥의 24기둥은 24절기를 의미하는 등 동양적 우주관을 건축으로 상징했다.

 

 

2층 누마루
높은 2층 누마루에 오르면 서쪽으로 인왕산, 동쪽으로 궁궐의 아름다운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동절기에는 경회루 내부를 개방하지 않아 안으로 들어가볼 수는 없었다.

 

 

날이 따뜻해지는 4월부터 내부관람을 위한 인터넷 신청을 받는다고 하니 꼭 한번 다시 가봐야할 것 같다.
2층에서 저 액자같은 창을 통해 내려다보는 풍경은 어떨지 내심 기대가 된다.

 

 

돌다리
경회루로 들어가는 3개의 돌다리에는 각각 엄지기둥에 벽사의 의미를 가진 동물상을 조각해놓았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기 이전에는 48개의 돌기둥에 승천하는 용들이 조각되어 있었다고 한다. 수면에 박혀있는 사각면의 돌기둥이 틀어져있는게 특이하다. 물살의 원할한 흐름을 위해서라고 한다. 돌다리 앞쪽 담장은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던 것을 2005년에 다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돌다리의 석수
이렇게 멀리서 볼 수밖에 없다보니 저 돌다리를 꼭 한번 건너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진다...

 

 

경회루 잡상
지붕위에 잡귀를 막는다는 의미에서 세워진 잡상이다.
근정전과 강녕전의 전각에 7개의 잡상이 얹어져 있는 반면 경회루는 모두 11개의 영험한 잡상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수는 모든 전각들중에 경회루가 가장 많은 수라고 한다. 그만큼 경회루가 매우 중요한 장소로 여겨지는 곳임에는 틀림없다.

 

 

인공섬 만세산
연산군 때에는 연못 안 인공섬에 만세산을 조성하고, 그 곳에 월궁을 꾸며 조화를 장식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고 한다.

 

 

만세산과 경회루 연못
경회루 건물이 없어진 후 경복궁이 다시 중건될 때까지 이 연못은 나라에 가뭄이 들 때마다 기우제를 지내는 곳으로 이용되었다. 추운 날 찍은 사진이라 수면이 얼어있다.

 

 

만세산 소나무
경회루 서쪽에 나란히 서있는 두 개의 인공섬에는 소나무를 심어 자칫 단조로울수 있는 연못에 운치를 더해준다.

 

 

연못 풍경
경회루 중건 당시 연못에 2마리의 청동 용을 넣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1997년 준설공사 과정에서 실제로 하나가 발견되었다. 정학순이 적은 '경회루전도'에 의하면 물과 불을 다스리는 용 두 마리를 경회루 연못 북쪽에 넣었는데, 북쪽에 용을 넣은 것은 생성되는 물로써 불을 제압하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출토된 용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하향정 (荷香亭 Hahyangjeong)
경회루 북쪽 담장에 있는 육각 정자인 하향정은 원래부터 있었던게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이 낚시를 즐기기 위해 지은 것이라고 한다. '하향'은 연꽃 향을 뜻한다.

 

 

필관문 (必觀門 Pilgwanmun)
1868년에 세운 필관문은 '반드시 그 여울목을 살핀다'는 뜻으로, 경회루 북쪽 담장, 하향정 우측에 있다. 북쪽 담장은 동쪽 담장과 함께 일제강점기때 철거된 것을 2005년에 다시 복원한 것이다.

 

 

동쪽 담장
동쪽 담장에는 경회루의 출입문인 자시문과 함홍문, 이견문이 있다. 자시문 맞은편엔 강녕전으로 갈수 있는 내성문이 있고, 담장끝인 북쪽에는 만시문이 있어 경회루의 영역 밖으로 나가게 된다.

 

 

자시문 (資始門 Jasimun)
1868년(고종5년)에 만들어진 문으로 경회루 동쪽 담장에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경회루의 첫 번째 다리로 이어지며 다리 가운데는 어도가 조성되어 있다. 동절기에는 경회루를 개방하지 않아 잠겨있다.

 

 

만시문 (萬始門 Mansimun)
경회루 뒷편 북쪽담장에 딸려있는 문으로 연회때 잔치음식을 장만하던 숙설소 방향으로 통하던 문이다. 밖에서 본 모습으로 안으로 들어가면 경회루의 동쪽담장이 앞으로 길게 이어진다.

 

 

경회루 야경

 

 

 

 

 

 

 

 

 

 

 

 

 

 

 

 

 

집경당 (緝敬堂 Jipgyeongdang)

 

중궁전인 교태전 북쪽에는 흥복전과 여러 빈들의 거처인 후궁 영역이 있었다. 이 영역과 관련있는 내전 가운데 현재 남아있는 것은 함화당과 집경당 뿐이다.

 

 

향명문 (嚮明門 Hyangmyeongmun)
집경당 남행각에 딸린 문이다. 이 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집경당이 나온다.

 

 

향명문 안으로 보이는 집경당.

 

 

봉양문 (鳳陽門 Bongyangmun)
집경당 동쪽행각에 있는 문이다.

 

 

집경당 (緝敬堂 Jipgyeongdang)
전면 8칸으로 구성된 집경당은 서쪽행각에 이어진 복도를 통해 함화당과 연결되어 있다. 후궁 영역의 건물이라 정확한 용도가 불분명하지만, 고종이 건청궁에 머물 당시 이곳 집경당에서 간간이 외국 사신들을 접견한 기록이 남아있다. 돌출된 누마루에서 북쪽 향원정을 감상할 수 있다.

 

 

집경당 현판
'집경'은 계속하여 공경한다는 뜻으로 <시경>의 대아·문왕편에 나오는 집희경지(緝熙敬止)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백상문 (百祥門 Baeksangmun)
집경당 서쪽행각에 딸린 문으로 함화당으로 가는 문이다. '백상'은 백가지 상서로운 일을 뜻한다.

 

 

복도각
오른쪽이 집경당이고 왼쪽이 함화당이다. 두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높은 복도가 남아 있어서 원래 궁궐의 복잡한 통로 체계의 흔적을 보여준다.

 

 

 

함화당 (咸和堂 Hamhwadang)

 

계명문 (啓明門 Gyeamyeongmun)
집경당에서 함화당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함화당 동쪽담장에 있는 이 월문을 통과해야 한다. 교태전의 연휘문처럼 하단은 화강암으로 만들고 그 위에 전돌을 쌓아올렸으며 꼭대기에는 기와을 얹었다. 전돌 가운데에는 문 이름을 넣고 양쪽 옆으로 학을 넣었다.

 

 

계명문
함화당 영역에서 본 계명문이다. 반대쪽과는 다르게 가운데 이름 대신 귀면문양을 넣었다. 담장 아래쪽에 석화분에 놓인 수석들이 눈에 띈다.

 

 

함화당 (咸和堂 Hamhwadang)
집경당의 서쪽에 위치한 건물로 복도각을 통해 집경당과 연결되어 있다. 건청궁의 장안당을 떠올리게 하는 구조다. 서쪽으로 누마루를 설치해 앞으로 돌출시켰다.

 

 

함화당
침전으로 사용된 건물로 정면 7칸, 측면 2칸의 규모다. 누마루 우측으로 개방된 3칸에는 마루를 깔았다.

 

 

함화당 현판
'함화'는 모두가 화합한다는 뜻이다.

 

 

함화당 누마루
누마루에서 본체까지 주련이 걸려있는게 보인다.

 

 

함화당 주련
오른쪽부터 왼쪽순으로 주련이 걸려있다.
可釣可?盤谷序 (가조가경반곡서) 낚시할 만하고 밭갈이할 만하니 반곡서이고 (반곡에 은거해 살면서 세상 명리에 초월하여 홀로 유유자적하겠다)
堪詩堪畵輞川圖 (감시감화망천도) 시 지을 만하고 그림 그릴 만하니 망천도라네

雲裏帝城雙鳳闕 (운리제성상봉걸) 구름속 도성에는 한쌍의 봉황새같은 궁궐이요
雨中春樹萬人家 (우중춘수만인가) 빗속의 봄 숲에는 수많은 인가로다

能招過客飮文字 (능초과객음문자) 과객을 불러 시문을 음미할 만하고
山水又足供歡해 (산수우족공환해) 산수는 또 기쁜 웃음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네

閑眠東閣修花史 (한면동각수화사) 한가로이 동각에서 잠자며 화사를 수정하고
偶坐南池注水經 (우좌남지주수경) 우연히 남지에 앉아 수경에 주석을 하네

 

 

함화당 주련
平生所學爲何事 (평생소학위하사) 평생에 배운바는 무슨 일을 위함인가?
後世有人知此心 (후세유인지차심) 후세에 누가 있어서 이 마음을 알아주리

妙書鴻戱秋江水 (묘서홍희추강수) 절묘한 글씨는 가을 강물에서 기러기가 희롱하는 듯하고
好句風行曉苑花 (호구풍행효원화) 아름다운 시 구절은 새벽 화원에 바람이 지나가는 듯하네

주련의 필사자와 낙관이 찍힌걸 볼수있다.

 

 

북쪽 담장
함화당 북쪽 담장에는 굴뚝이 붙어있고 우측으로 창무문이 있다.

 

 

창무문 (彰武門 Changmumun)
창무문을 통해 함화당 뒤뜰에서 향원정으로 나가게 된다.

 

 

응복문 (應福門 Eungbokmun)
집경당 북쪽 담장에도 향원정으로 나가는 응복문이 있다.

 

 

하지 (荷池)
함화당 북쪽 창무문을 나오면 장방형의 조그만 돌 연못이 있다. 창무문 쪽에서 보면 앞면에 하지(荷池)라고 쓰여 있는데, '하지'는 연꽃이 있는 연못을 뜻한다. 모르고 지나칠뻔 했는데 다행히도 향원정을 둘러보다가 눈에 띄었다.

 

 

 

장고 (醬庫 Janggo)

 

장고는 궁중 연회나 제례에 쓰이는 장을 보관하던 곳이다. 북궐도형에는 함화당과 집경당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장고가 있는데, 이곳은 서쪽 장고로서 태원전과 경회루 사이에 위치한다.

 

 

예성문 (禮成門 Yeaseongmun)
장고로 들어가는 정문이다. 닫혀있어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일제강점기 때 훼손되었던 것을 2005년 태원전과 함께 복원했다.

 

 

새롭게 복원된 장고의 모습
큰 잔치가 있을 때는 임시주방인 숙설소가 장고 가까이에 설치되었으며 장고마마가 장독들을 관리하였다.

 

 

현재 장고의 모습은 발굴조사 결과에 따라 2005년에 복원한 것으로 경사지를 활용한 계단식 장독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시된 독은 2007년에 전국에서 수집한 것으로 우리나라 독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하는데 하루빨리 일반에게 개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