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일상이야기

[일상이야기] 왜곡된 기억과 기나긴 꿈

BayZer™ 2024. 7. 9. 21:22

2024.07.04 ~

 

 

한밤중, 그러니까 새벽 3시쯤이면 꼭 잠에서 깬다.

 

 

일찍 자는 편도 아닌데 그 시간만 되면 눈이 저절로 떠져서 다시는 잠을 잘 수가 없고,

 

 

TV를 켜자니 너무 이르고, 그래서 폰을 열게 된다.

 

 

사진 한장 한장 넘겨가며 보다보면 어느새 날이 새고, 그제야 TV를 켠다.

 

 

바로 우리 엄마 얘기다.

 

 

평범한 일상이야기를 쓰는건데 등산하는 것보다 어렵게 느껴진다면 믿어질까?
나의 일상은 언제나 엄마 이야기로 시작된다.

 

 

잠에서 깨 날이 밝을때까지 사진을 보는 일,
나도 몰랐었는데 언제부턴가 꼭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해주어 알게 된 사실이다.

 

 

2년전 퇴원해서는 5개월 동안은 살던 집을 대나무 집으로만 알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집인줄도 몰랐었다.

 

 

"병원 뒤에 내가 살던 대나무 집이 있어,
담쟁이풀이 얼마나 이쁜지 몰라~
간호선생님들이 퇴근하면 그집으로 와서 같이 밥먹고 그랬거든~"

 

 

당시 엄마는 4개월을 중환자실에서, 그후 2개월을 격리병동에서 인공호흡기와 콧줄로 생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왜곡된 기억은 살고 있는 집마저 낯설게 만들었고,

 

 

나는 처음엔 그런적 없다며 부정했다가 후에는 적당히 맞장구 쳐주며 기억에 도움이 될까 사진들을 폰에 저장시켜 주었다.
"그래, 살던데가 이런데란 말이야~"
오래전 보성 여행 갔을때의 사진인데 기억이 완전 엉켜있는 듯~ 이렇게 역효과를 불러오는 사진도 있긴 했지만 ㅠ;;

 

 

그날부터 저장해 준 사진들을 새벽이면 계속 보고 있었던 것이다.
"대나무집 아직도 기억나?" 내가 물으면 이제는 꿈에서 본 집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진 볼때 팔이 너무 아퍼~"
옆으로 누워서 보다보니 사진 한장 한장 손으로 넘기는게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알게 된 갤러리의 슬라이드쇼 기능, 슬라이드쇼만 누르면 2초마다 저절로 사진이 넘어가니 엄마에겐 꼭 필요한 완전 신박한 기능이었다.
지금은 갤러리에 저장된 사진만 1,000장이 다 되어 간다.
"눈 안아파? 너무 오래 보지마~"
"괜찮아, 그거 다 보고나서 테레비 키면 딱 맞아~"

 

 

TV 옆에 놓인 빛바랜 사진의 액자를 보면서 나 옛날 사진들은 없냐고 물어보신다.

 

 

옛 사진들은 폰이 아닌 카메라로만 찍어 모두 내 컴이나 외장하드에 따로 저장되어 있었다.
갑자기 옛 사진들이 왜 보고싶어 질까,,, 쓸데없는 걱정으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옛 사진 200여장을 폰에 저장해 주었다.

 

 

지금은 바닥에 앉으면 못일어나는데, 앉아있는 모습이 낯설어질 정도로 정말 오랜만에 본다.

 

 

엄마는 이 사진들을 찍히기만 했지 지금까지 한번도 본적이 없다.
"이건 어디야~"
자세도 꼿꼿하고, 얼굴 주름도, 걸음걸이도...
그리 오래된 사진들이 아닌데도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아가씨 때 같다고 농담도 했었다.

 

 

계양산 정상에서 먹는 쭈쭈바, 당시에 2,000원에 사먹었던것 같다.
지금과는 달리 계단도 없고, 산비탈을 타고 올라가는 등산로였는데,, 나는 지금까지도 어떻게 올라갔냐며 물어보곤 한다.

 

 

오래전 사진들을 보면서 괜히 더 우울해지지 않을까 내심 걱정도 했었는데~

 

 

엄마는 그 사진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도 새벽 루틴 마냥 1,000장의 사진들을 매일같이 보고 있다고 한다.

 

 

"대나무집은 언제 구경시켜 줄건데???"
"거긴 이제 못가~^^"
왜곡된 기억이라고만 생각했던 대나무집이 생의 기로에 선 엄마에게는 한줄기 빛과도 같은 꿈이었을 것이다.

 

 

기나긴 꿈을 꾸며 좋은 기억속에만 존재하는 그곳은 과연 어떤 곳일까~

 

 

 

나의 일상 중 엄마의 운동은 거를 수 없는 중요한 시간이다.

 

 

운동 코스중 3코스로 부르는 서부간선수로를 걷는 길, 어느새 연꽃이 활짝 피었다.

 

 

작은 구간에 심겨진 연밭이지만 커다란 연잎은 수면 위를 온통 뒤덮어버렸고,

 

 

빗물 촉촉한 다양한 야생화들이 길가에 한들 한들~ 저게 봉숭아라며 손가락 물들이던 시절의 이야기도 해준다.

 

 

키만 커다란 접시꽃도 피어나고,

 

 

새끼 붕어들이 바글바글한 서부천에는 낚시꾼들이 모여 들었다.

 

 

오르내림이 없고, 그늘도 만들어주는 시원한 이 길을 엄청 좋아하신다.

 

 

벚꽃길로 유명한 곳이라 벚꽃 만발할 때도 걸었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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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 길로 운동을 오게 되면 항상 계양꽃마루까지 걸은 후 간식을 먹는다.

 

 

간식은 참외와 곡물과자,,
계양꽃마루의 초화단지는 목수국이 식재된 곳인데 꽃이 진건지, 아직 안핀건지~

 

 

"어머니, 참외 별로 안남았어요, 다 드시지 말구요~ 사진 찍을땐 먹는 척만 해주세요~"
나의 주문에 웃겨죽는~ㅋㅋㅋ

 

 

 

작년 가을에는 알록달록 코스모스가 만발했었고, 올 봄에는 노란 유채꽃이 가득 피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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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아무것도 없는 풀떼기밭~

 

 

무궁화는 활짝 피고 있는 중이고, 길가에는 심은지 얼마 안된 꼬마 댑싸리들이 쪼르르~

 

 

호박터널에도 올해는 다양한 호박을 심지 않았는지, 아니면 아직 일러서 그런건지 터널안에서도 하늘이 훤히 보인다.

 

 

호박터널 끝부분에 있는 미세먼지 차단숲, 여기까지 쉬엄쉬엄 2시간이 걸렸다.
더이상 걸으면 힘들어질 수 있으니 오늘은 여기서 마치는걸로~

 

 

잠시 휴식한 뒤 전용 자가용인 휠체어 타고 돌아간다~^^

 

 

 

두부김치와 계란말이로 점심을 먹고 있는데 택배 3개가 연이어 도착했다.
여느때처럼 엄마는 당연히 내가 시킨건줄 알고 그리 궁금해 하지 않으면서도,
"뭘 이렇게 많이 시킨거야~?"
"엄마 선물~^^"
"뭔데, 뭔데 빨리 열어바바"ㅋㅋㅋ

 

 

식사를 마치고 약도 챙겨 먹고, 무엇이 들었있을지 나도 모르는 박스 하나를 개봉,
밝은색의 모자와 블라우스가 곱게 접힌채 모습을 드러냈다.

 

 

(언급하지 않으려 했지만) 엄마를 각별하게 생각한다는 블친님이 엄마의 2살을 축하하며 보내준 선물이었다.
써보고, 입어보더니 색깔도 마음에 든다며 너무 좋아하심~^^

 

 

가끔 같은 아파트 이웃 친구분께 반찬이나 과일들을 받아본 적은 있는데 모르는 사람에게서 받는 선물이라니~
계속 누가 보낸거냐며 물어본다.
"엄마 나몰래 숨겨둔 딸이나 이모 있어???"
"열명 있다~!!!"ㅋㅋㅋ
말해놓고 나보고 조용히 하래~ㅍㅎㅎ

 

 

 

 

커다란 박스 하나는 성주 참외였다.
어떤 과일을 좋아하실까 몰라서 포스팅에서 본 참외를 보내신 거라고 했다.
바로 하나 깎아 후식으로 먹고~

 

 

하얀 스티로폼 박스는 누가 봐도 해산물이었다.

발신지가 완도로 되어 있었는데 냉기 가득한 박스 안에 살아있는 전복이 들어 있었다.

 

 

기력 보충엔 최고라지만 대략 난감~
엄마는 퇴원 후 죽 식사를 할때도 오독오독한 전복죽은 씹을수가 없어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인공호흡기를 너무 오랫동안 하고 있어서 이가 많이 상한 상태였고, 그때 당시에도 호스가 입을 통해 목으로 들어가는 인공호흡기를 더이상 하면 식도 마저 망가진다고 해 목 앞쪽에 구멍을 뚫어 관을 삽입했었다.

 

 

암튼 손질하는 방법을 우선 배워야 했다.
검색해 본대로 새 칫솔 하나 꺼내 박박 문지르고, 숟가락으로 껍딱지에서 잘 분리해 내장 터지지 않게 가위로 잘라내고,
손질 안된거랑 비교도 해보고, 이빨이 있다는데 3개를 닦을 동안 이빨을 찾지 못했었다.~ㅋ

 

 

우여곡절 끝에 거무튀튀하던 전복이 뽀얗게 변신 완료, 내 손길과 수돗물에 초죽음이 된것 같다.ㅋ
남들은 껍데기에 올려 예쁘게 찍었던데, 그런거는 생각조차 나지도 않았고~
이제 이걸 어찌해야 할까???
엄지 손톱 밑이 찢어졌는지 손끝 통증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는 걸로~ ㅠ;;

 

 

요알못 1인에게는 참 어려운 숙제다. 요리법을 다시 검색해 본다.
전복죽, 전복버터구이, 전복찜, 전복내장밥...! 내장밥???
내장은 게우소스로 만들수 있으니 버리지 말라고~
망~ 이미 음쓰통으로 가버렸는데~ 아, 대나무집 생각난다 ㅠ;;

 

 

역시 요리는 산에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것 같다.
섬에 들어가는 일요일, 엄마는 막내와 함께 전복찜과 구이로 해드셨다고 한다.
나의 걱정은 기우였나? 맛있게 드셨다고 하니 어려웠던 숙제가 저절로 풀렸다.
"사진은~???"
"뭔 사진~!!!"

아ㅎㅎㅎㅎ~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소한 일상 이야기.

예전에는 엄니, 어머니, 모친, 박여사~ 등 다양한 호칭을 썼었는데,
그냥 내가 일상에서 부르는 엄마라는 말이 글을 쓸때도 제일 편하고 좋은것 같다.

 

 

 

선물주신 분께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Photographed by BayZ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