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3 동궁, 사정전

2012. 3. 16. 19:19+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문화유산 답사기

[조선 왕조 제일의 궁궐을 만나다]
경복궁 #3 동궁과 사정전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 종로

Photographed by BayZer™

2012.03.03

 

 

 

동궁 (東宮 Donggung : 비현각, 자선당)

왕세자는 떠오르는 해와 같아서 세자궁을 동쪽에 세워 동궁이라 부른다. 자선당은 세자가 거처하던 곳이며, 비현각은 공부를 하며 정무도 보던 외전에 해당한다. 남쪽의 춘방터에는 세자 교육을 담당하던 시강원이, 계방터에는 경호와 의전을 담당하던 관청이 있었다.

 

 

동궁영역
근정전 동쪽 행각에 외부로 돌출되어 있는 융문루를 통해 나오면 동궁 영역이 있다. 동궁영역으로 들어서면 저멀리 정면에 경복궁 동쪽 담장의 건춘문이 보인다. 그 앞으로 계방터와 춘방터가 있는데 아직은 복원이 안되어 있었다.

 

 

동궁영역에서 바라본 근정전
동궁 영역에서 뒤돌아보면 인왕산을 배경으로 근정전의 웅장한 전각이 한눈에 들어온다.

 

 

건춘문 (建春門 Geonchunmun)
건춘문은 경복궁의 네곳 대문중 동쪽 문으로 만물의 기운이 움트는 ‘봄이 시작 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건춘문은 주로 세자와 동궁 영역에 위치한 각사에서 일하는 신하들이 출입하던 문이다.

 

 

건춘문 천장의 용
현재의 문은 고종 2년(1865) 경복궁 중건 당시 건립된 것으로 천장에는 용이 그려져 있다.
현재 건춘문으로 나가는 길은 막혀있어 통행을 할 수 없다. 현판을 보려면 경복궁 밖으로 나가야 한다.

 

 

동궁의 담장
건춘문을 보고 동궁으로 오면 동쪽 담장쪽으로의 출입이 수월하다. 이극문과 구현문이 있다.

 

 

이극문 (貳極門 Igeukmun)
동궁영역의 동쪽 담장에 딸린 문으로 이극은 왕세자를 의미한다. 2개의 출입문으로 되어있다.

 

 

동궁 (東宮 Donggung)
이극문을 들어서면 동궁의 낮은 담장 너머로 근정전이 보인다. 좌측에 보이는 문들은 이름이 없고, 정면에 보이는 문이 삼비문, 우측 앞쪽에 보이는 문이 이모문이다. 근정전과는 달리 동궁 영역은 아주 한적하고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이다.

 

 

이극문과 칙소
동궁영역에는 2개의 칙소(측간, 화장실)을 두었다고 하는데 그중 하나의 칙소로 추정되는 건물은 들어왔던 이극문을 돌아보면 우측에 딸려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모문 (貽謨門 Imomun)
이모문은 비현각의 첫 번째 남쪽 문으로 1867년 경복궁 중건 당시에 만들어졌지만 지금의 문은 1999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선대 국왕이 자손에게 내리는 교훈을 의미하는 '이모'는 '깨칠 이', '꾀할 모'자를 쓰지만 모(謀)는 국가 경영을 위한 훌륭한 계책이나 말씀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이모문 좌측에는 길위문과 통하는 작은 문이 있으며, 이곳으로 들어가면 또하나의 칙소가 있다.

 

 

칙소
비현각과 자선당의 행각 사이에 낮은 담을 두르고 2칸으로 이루어진, 측간으로 추정되는 작은 건물을 만들어 놓았다.
잘 살피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궐내의 칙소 관리와 청소는 전연사가 담당했다고 한다.
좁은지역이라 사진을 한컷에 담을수는 없고 두장을 찍어 이어붙였다.

 

 

인적없는 동궁 영역에서 처음 아이들을 만났다.

 

 

한적한 동궁

 

 

비현각 (丕顯閣 Bihyeongak)
덕을 크게 밝힌다는 의미의 비현각은 세자가 공부를 하며 정무도 보던 집무실로 사용되었다.
왕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곳 치고는 소박한 느낌이 든다. 세자가 마치 스승과 공부라도 하고 있는 듯 다른 전각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고요하고 한적한 곳이다.

 

 

비현각 현판
1999년에 설치된 현판으로 중요무형문화재 각자장 기능 보유자 오옥진이 쓰고 새겼다.
옛 서법을 따라서인지 비(丕)자가 정자체와는 확연히 달라 보임을 알수있다.

 

 

비현각 내부

 

 

비현각
세종때 건립된 비현각은 당시 왕세자였던 문종의 업무 공간으로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개방되어 있는 가운데 3칸에는 온돌을 깔았다.

 

 

잡상이 없는 비현각
모든 전각에 배치되어 있는 잡상이 비현각에는 없다는 점이 특이하다.

 

 

동쪽 행각
대가집에 딸린 행랑채처럼 여러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쪽 행각

 

 

비현각 북쪽(뒷쪽)
비현각을 뒤로 돌아 이름없는 협문을 통해 나가면 자선당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오른쪽에 공사중인 담장은 옛 소주방 권역 복원공사를 위해 막아놓은 것이다. 정면에 보이는 행각의 문은 사정전으로 통하는 연태문이다.

 

 

대장금과 수라간
현재의 동궁은 1999년 자선당과 비현각 영역만 복원이 되었다.
동궁의 북쪽에는 수라간인 내.외 소주방이 있었다. 궁궐에는 왕실가족이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옷을 만들고 음식을 요리하는 궁녀들이 있었는데, 음식을 만드는 곳이 바로 수라간이다. 수라간에는 찬 음식을 만드는 생과방, 더운 음식을 만들고 잔치 때 떡과 음식을 만드는 소주방이 있었다고...
방문 당시 경복궁에서는 2014년까지 옛 소주방 권역 복원공사를 시행중이다.

 

 

북궐도
자선당으로 가는길 우측 담장에 붙어있는 북궐도.. 북궐은 경복궁의 별칭이며, 불궐도는 경복궁의 전도를 일컫는다.
지금의 관람지도와 비교해보면 아직 많은 건물이 들어서야함을 알 수 있다. 2009년 기준으로 40%정도가 복원되었다고 하니 옛 경복궁의 규모가 얼마나 어마어마했는지 짐작케한다.

 

 

담장
비현각의 서쪽 담장과 자선당의 동쪽 담장이 만들어낸 정갈한 풍경이다.

 

 

자선당 (資善堂 Jaseondang)
자선당은 세자와 세자빈의 침전에 해당하는 곳으로, 궁궐의 동쪽에 위치한 연유로 동궁전이라고도 부르며, 세자를 '동궁' 혹은 '동궁마마'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때 자선당은 일본으로 옮겨졌다가 지진으로 불타 버렸고, 기단석만 반환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999년에 복원된 것이다.

 

 

자선당 현판
비현각과 마친가지로 1999년에 설치되었으며 오옥진이 쓰고 새겼다. 자비로운 성품을 기르는 곳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자선당 마루와 내부
자선당은 28년간 태자의 삶을 산 문종의 자취가 있는 곳이다. 문종이 세자 시절에 거처하던 곳으로 단종을 낳기도 하였으며, 고종 때 경복궁 중건 후에는 순종이 거처를 하였다. 이곳도 비현각과 마찬가지로 소박한 느낌이다. 내부를 보면 정면에는 흑칠 나전농을 놓았고 왼쪽에는 나전 문갑이 배치되어 있다. 오른쪽에는 죽석도병풍을 세웠다.

 

 

남쪽 행각
남쪽 진화문에 딸려있는 것으로 여러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화문 (震化門 Jinhwamun)
진화문을 통해 자선당의 현판이 보인다. 진화문은 자선당의 남문으로 왕세자가 변화된다는 의미이다.

 

 

중광문 (重光門 Junggwangmun)
중광문은 자선당의 남쪽에 딸린 문으로 2개의 출입문으로 되어있다. 중광문 앞에 진화문이 보인다.

 

 

삼비문 (三備門 Sambimun)
자선당에서 중광문을 통해 나와 삼비문으로 나가면 다시 근정전으로 갈 수 있다.
동궁에서 느낀거지만 출입문이 아주 많다는거다. 다른 문을 이용해 근정전이나 사정전, 자경전 등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많은만큼 왕이나 대비가 세자의 행동과 생활을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출입문이 많은 것과는 반대로 동궁에서는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이곳의 관람을 빼먹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인듯...

 

 

삼비문과 미성문 (美成門 Miseongmun)
동궁 권역의 서북쪽에 위치한 미성문은 아름다움이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세자의 아름다운 덕이 이루어지려면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미성문으로 들어가면 사정전 동북쪽 출입문인 연태문이 있다.

 

 

 

사정전 (思政殿 Sajeongjeon)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더불어 일상 업무를 보던 곳으로,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국정 세미나인 경연 등 각종 회의가 매일같이 열렸다.

 

 

사정문 (思政門 Sajeongmun)
근정전 북쪽에 사정전으로 통하는 사정문 있다. 사정문은 3칸으로 되어 있으며 이 문 역시 가운데 칸은 왕이 드나들 때 사용하였고, 신하들은 좌우의 문을 이용하였다. 사정문 아래로 사정전의 현판이 보인다.

 

 

사정문 현판
선정(善政)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정도전이 이름 지었다.

 

 

사정전 (思政殿 Sajeongjeon)
편전(便殿)은 왕이 평소에 정사를 보고 문신들과 함께 경전을 강론하는 곳이다. 또 종친, 대신들과 함께 주연을 즐기고, 왕이 직접 지켜보는 가운데 과거 시험을 치르기도 한 곳이다. 경복궁의 편전 영역은 사정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정전의 정면 모습은 카메라의 한 프레임에 모두 담기가 벅찰정도로 사정문에서 가까이에 있다.

 

 

사정전 현판
천하의 이치는 생각하면 이를 얻을 수 있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를 잃게 되는 것이므로 왕으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여 정치할 것을 촉구는 내용의 사정전 뜻풀이를 임금에게 올리며 정도전이 이름 지었다. 이 현판은 당시 글씨에 뛰어났던 이조판서 조석우가 썼다.

 

 

사정전 내부
1867년 (고종4년)에 중창된 사정전은 온돌방을 둔 만춘전, 천추전과는 달리 공식 업무공간으로 마루만 깔려있다. 사극에서 왕과 대소신료들이 회의를 하거나 경연을 하는 장소로 나오는 곳이다.

 

 

어좌
내부에는 황금색 용상으로 장식된 어좌를 두었고, 어좌 뒤로는 일월곤륜도 병풍을 배치했고 위로는 운룡도가 그려져 있다.

 

 

어좌와 일월곤륜도
어좌 뒤의 일월곤륜도는 다섯 개의 큰 산봉우리 아래 소나무와 폭포, 파도를 그려넣었고, 상단 좌우에는 해와 달을 넣어 좌우 균형을 갖추었다. 일월도, 일월오봉산도, 일월오악도라고도 한다.

 

 

운룡도
어좌 위로는 두 마리의 용이 붉은색 여의주를 중심으로 배치된 운룡도라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진품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천장
천장은 화려한 무늬의 우물천장으로 장식되어 있다.

 

 

사정전

 

 

만춘전 (萬春殿 Manchunjeon)
사정전의 동쪽에 위치한 건물로 이름에서 느껴지듯 봄을 상징하는 만큼 온돌이 설치되어 있어 한기가 드는 계절에는 만춘전에서 경연이나 정무를 보았다.

 

 

만춘전 현판
만년의 봄이란 뜻으로 오래고 영원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글씨는 경복궁 중건 당시 좌승지였던 송희정이 썼다.

 

 

만춘전과 사정전
정면 6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만춘전은 임진왜란때 불에 타 완전히 없어진후, 1866년 (고종4년)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함께 재건되었다. 그후 6.25전쟁때 폭격으로 파괴되어 주춧돌만 남았던 것을 1988년에 다시 복원하였다.

 

 

만춘전 내부

 

 

만춘전 굴뚝
사정전 뒤쪽에는 없는 굴뚝이 만춘전 뒤쪽에 2기가 세워져 있다. 온돌이 설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만춘전 옆면에 아궁이가 있다.

 

 

합각
만춘전의 합각에는 사정전에서 가까운 서쪽에 강(康), 동쪽에 녕(寧)자를 전자로 새겨 넣었으며, 만춘전과 대칭되는 천추전은 이와 반대로 강, 녕자를 새겨 넣었다.

 

 

천추전 (千秋殿 Cheonchujeon)
사정전의 좌측에 위치한 천추전은 만춘전과 함께 비공식 업무시설로서 온돌방을 두어 가을과 겨울에 이용했다. 건립 당시에는 사정전과 연결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소실된 후 다시 중건되면서 분리된 건물이 되었다.

 

 

천추전 현판
천년의 가을이란 뜻으로 오래고 영원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판은 경복궁 중건 당시 이조참의로 있던 정범조가 썼다.

 

 

천추전과 사정전
사정전하면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있는데, 사육신의 친국 현장이 바로 이 사정전 앞이었다고 한다. 사육신의 절개가 살아 있는 사정전의 앞 뜰...

 

 

마루와 내부
정면 6칸 중 2칸은 개방된 채로 마루를 놓았다. 마루의 좌우로는 만춘전과 마찬가지로 온돌방이 설치되어 있다. 문종이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천추전 아궁이와 굴뚝
천추전 옆면에는 만춘전과 마찬가지로 온돌이 설치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아궁이가 있고, 뒤쪽으로 돌아가보면 굴뚝이 만춘전의 것과 같이 2기가 세워져 있다.

 

 

앙부일구 (보물 제845호)
사정전 앞 높은 돌기둥 위에 세워져있는 앙부일구는 세종 16년(1434년)에 처음 만들어진 천문의기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던 해시계의 일종이다. 시계판이 가마솥같이 오목하고 하늘을 우러러 보고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청동의 오목판 안바닥에는 일곱 개의 세로줄이 그려져 있는데, 이를 시각선이라고 한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면서 생기는 그림자가 이 시각선에 비쳐지면서 시간을 알 수 있다. 바닥에는 시각선 이외에 열세 개의 가로줄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24절기를 나타낸다. 제일 바깥줄은 동지의 해 그림자가 따라가는 줄이며, 제일 안쪽 줄은 하지선이라고 하니 얼마나 과학적인지 우리문화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게 된다. 이것은 복제품으로 진품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남쪽 행각
사정전을 마주보며 사정문 좌우로 길게 창고가 배치되어 있는데 각각 기둥마다 창고 이름이 붙어있는게 보인다.
사정문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 천자고부터 왼쪽 월자고까지 총10개의 창고를 두었다.

 

 

천자고 ~ 월자고
천자문 (천지현황우주홍황일월) 글자 순서에 따라 서쪽 천자고가 처음이고 동쪽 월자고가 마지막이다.
천자고는 수정전으로 통하는 서쪽 행각의 일각문 안쪽에 붙어있다.
다른 이름의 창고도 마찬가지로 왕이 정사를 논의하면서 필요한 물품이나, 왕실의 요긴한 물품들을 저장하는 창고로 활용했다.

 

 

협선당 (協善堂 Hyeopseondang)
사정전의 서쪽 행각에 속해 있는 협선당은 여러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일반적인 사무를 보는 사무실 역할을 했다.

 

 

임금과 신하가 서로 선(善)을 돕는다는 의미의 협선당은 1868년에 강학청으로 삼아 왕자의 교육에 활용하기도 했다. 협선당 왼쪽으로 용신당이 연결되어 있다.

 

 

용신당 (用申堂 Yongsindang)
사정전의 서쪽 행각에 속해있는 용신당은 우측으로 협선당과 함께 붙어있다.

 

 

동쪽 행각
다른 행각과는 다르게 동쪽 행각은 앞쪽에 마루가 만들어져 있어 잠시 앉아서 쉬어갈 수 있다. 남쪽 끝에는 사현문, 북쪽 끝에는 연태문이 딸려 있다.

 

 

사현문 (思賢門 Sahyeonmun)
사정전 동행각의 남쪽에 있는 문이다. 밖에서 본 모습.

연태문 (延泰門 Yeontaemun)
사정전 동행각의 북쪽에 있는 문으로 밖으로 나가면 동궁영역이 나온다. 밖에서 본 모습.

 

 

다음은 침전 영역인 강녕전과 교태전으로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