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화창한 하늘이 열렸지만 후텁지근한 날이다.
이 시간 저 꼭대기 계양산 정상에서 보는 풍경도 예뻤을듯~
요란하게 생긴 풍접초가 예쁜 꽃을 피웠고, 누군가 화단에 심어 놓은 포도나무에는 포도가 송글송글 영글어간다.
아침이면 식사하고 운동하고 간식 먹고~
엄마의 루틴은 항상 지켜지고 있다.
심지어 비오는 날에도 운동을 나오는데,,
공원 옆 고가 아래를 걸으면 비 한방울도 맞지 않는다는걸 알고난 후 비가 오는 날도 운동을 매번 나오고 있다.
비가 그치면 다시 공원길로 들어서고~
매일 하는 운동을 이제 비오는 날도 꼼짝없이 하게 생겼다는 나의 하소연이 엄마는 웃겨 죽겠단다.
오늘은 점심때 일정이 있어 나가지 말자 했더니 그럴 수는 없다며, 교통공원에서 간단히 한바퀴만 돌고 오잔다.
어제까지만 해도 꽃이 없었는데 하루 아침 사이에 배롱나무 꽃이 피었다며 하는 말.
"거봐, 나오길 잘했지?"
4일전까지 멋진 부채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가족할인 해서 만원이면 이 부채를 가질수 있다며 팔아보려 했는데 영업 실패~ㅋ
다음날 드디어 천원에 팔았는데 갑작스런 소낙비에 다 젖어 찢어지고 말았다.
A/S가 안되는 관계로 다시 환불 처리~ㅋㅋㅋ
우산 없을때 빗방울 떨어지면 쉬어가던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는 바람 좋은 쉼터가 되어주고,
처음 이곳에서 사진찍을때 뒤에 차 온다고 하면 짬짝 놀라곤 했었는데 지금은 속지 않는다.
"뭔 나무가 이렇게 생겼데~"
향나무잖아 하면서 아는 척을 했는데 사실 무슨 나문지 나도 모르겠다.
사실 오늘 운동 중에는 즐거운 표정만 있는게 아니었다.
병원 예약이 잡혀있는 날이라 엄마는 병원 가는게 미리부터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긴장도 풀어줄겸 놀래켜 주려고 매미 한마리를 내밀었더니~
"엄마야~ 이게 뭐야~!!!"
역효과가 났다~ㅠ;;
"내가 잘못했으니 같이 가시지~"
운동을 평소의 절반도 안했는데 벌써 등이 다 젖어 있었다.
운동 후 정해진 시간에 간식은 꼭 지켜지고 있었는데 오늘은 혈액검사가 있어 금식을 해야 한다.
이 참에 엄마의 간식 Best5를 소개해 보면~
첫 번째는 가마솥 누룽지,
아침 대용으로 먹을만큼 좋아하는데, 식사로는 영양이 부족할것 같아 간식으로만 먹자고 나의 잔소리를 많이 듣는 편이다.
두 번째는 약식과 그린ㅇㅇ
적절한 영양공급이 필요한 환자를 위한 영양식으로 퇴원 직후에는 병원에서 권했던 고농축 300kcal를 먹었는데 냉장고에 넣어두면 너무 걸죽해지고 맛도 별로여서 지금은 구수한 맛으로 바꿔 구입해 먹고 있다.
물론 냉장고에 넣어도 두유처럼 맛있어서 좋아한다.
세 번째는 호박떡과 메추리알 또는 삶은계란
떡은 내가 먹지 못하게 하는데 좋아하니 어쩔수가 없다.
특히 기장떡과 호박떡을 좋아하고, 삶은계란은 잠자기 2시간 전에 먹으면 숙면에 도움이 된다하여 매일 저녁에 하나씩 먹고 있다.
네 번째는 캐슈넛과 붕어빵, 그리고 과일들
캐슈넛은 다른 견과류에 비해 연해서 좋아하고, 붕어빵은 전자렌지에 한번 돌리면 쫀득쫀득해진다. 길거리 붕어빵 아님~^^
다섯 번째는 통밀빵과 소금빵
계란과 버터, 설탕을 넣지않은 비건 빵집으로 유명한 곳에서 사온건데 사실 엄마보다는 내가 더 좋아하는 빵들이다.
엄마는 도너츠나 찹쌀모찌, 꽈배기가 더 맛있다고 하신다.
통밀빵은 텁텁하고, 소금빵은 아무것도 들지 않아 싫고, 처음 사온 도쿄앙버터는 바삭한 겉부분이 너무 딱딱하다고~
물론 내가 좋아하는 빵들이니 나 먹으라고 그런 핑계를 댄다는걸 알고 있다.
병원 예약이 있는 날,
예약시간 두시간 전에 도착해 혈액검사를 먼저 하고, X선 촬영까지 마친후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까지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데 엄마에게는 긴장의 연속이다. 그동안에 점심도 먹고 하면 좋을텐데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아직도 병원에만 오면 표정이 굳어버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내 얼굴조차 보지 못하는데 병원에서 내 얼굴을 보면 무슨 이유에선지 눈물이 난다고 한다.
검사 결과 모두 정상 수치를 보인다며 관리를 잘하고 있다는 담당교수의 칭찬에도 표정은 쉬이 풀리지 않고,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
이제는 마음 편히 가져도 될텐데...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게 잘 안돼나 보다.
그렇게 병원가는 날은 평범한 하루의 루틴을 깨버리고 만다.
한때는 정신과 진료도 권했었는데 엄마는 그럴 필요 없다고, 다행히 병원 밖으로 나오면 다시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복날이고 해서 맛있는 삼계탕 먹으러 가자 했더니 닭 사서 백숙 해 먹자고 하신다.
요리 못하는거 알면서 나를 시험에 들게 할 작정인지~ㅎ
간수치 올라간다는 이유로 몸에 좋은 별다른거는 넣지 않았고, 닭에 물 붓고 통마늘 한주먹과 찹쌀 한주먹, 그리고 소금간 약간.
그렇게 푹 끓여낸 초간단 백숙이지만 내가 해주는게 제일 맛있다는 거짓말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퍽퍽한 가슴살은 따로 뜯어내 닭죽으로 만들어 오후 간식으로 먹었다.
엄마의 기분을 풀어주는 방법은 다양하다.
점심을 먹고나면 무료해지는 시간이 오는데 그럴땐 치매 예방에도 좋다는 그림맞추기 누룽지 사기 한판을 벌인다.
처음부터 광으로 달리는~
고나 스톱없이 끝까지 쳐서 50점을 먼저 나는 사람이 이기는 우리만의 룰~
패를 돌릴때 쌍피 한장씩은 몰래 끼워 넣어 주는데, 기어이 오광을 하고 말았다. 오광을 완성시켜 주기 위해 모르는척 엉뚱하게 친 결과 26점, 광박이라 52점, 50점 내기가 한방에 끝났다ㅋㅋㅋ
언제나 그렇듯 누룽지는 내가 사야 한다.
아침 운동을 하는둥 마는둥 했다며 오후에도 나가자고 하신다.
덥다고 못나가게 했는데 기어이 나가고 마는~
걷기를 워낙 좋아하다보니 아프지만 않았다면 아마도 주말이면 나와 함께 전국의 둘레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도깨비가지'라는 내 말에 뭔 이름이 그러냐며 즉흥에서 지어낸줄 안다.ㅎ
산책길 가장자리로 백일홍도 꽃을 피웠다.
엄마에게는 아무일도 생기지 않는 그저 평범한 하루가 행복이고 기쁨이다.
그런 하루가 일상의 큰 축복이라는걸 지금은 나도 알고 있다.
블친님 홈에서 가져온 좋은글 하나~
글 출처
메멘토모리:)님 홈 그리고_기억만 남는다 (memento010.tistory.com)
어머니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Photographed by BayZer™
'+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 일상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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