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왜목마을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살펴보자.
배를 타고 왜목마을 쪽을 바라보면 얕으막한 산과 산사이가 움푹 들어가 가늘게 이어진 땅 모양이 마치 누워있는 사람의 목처럼 잘록하게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
왜목마을 홈페이지), 다른 견해로는 왜가리의 목을 닮아 왜목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서해대교를 건너 송악IC로 진출한뒤 (인천기점), 38번 국도를 따라가다보면 석문방조제가 나온다.
석문방조제는 충청남도 당진군 송산면 가곡리에서 석문면 장고항리의 바닷길을 연결하는 방조제로서, 이로 인해 바다가 양쪽으로 쪼개지면서 하나의 거대한 담수호인 석문호가 생겨났다.


석문호에서 보이는 현대제철소의 야경도 볼 만하니 일출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가는길에 잠시 야경을 담아 보는것도 좋을듯싶다.


사실 왜목마을은 어느 사진가의 일출사진 한 장으로 유명해진 곳이라고 한다. 서해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수 없다.
몇몇 관광객들이 이른 아침부터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 일출시간은 6시39분...
휴게소와 제철소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해 일출을 놓치는줄 알았다. 서둘러 장비를 세팅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고요하기만 하다.


5분이 빠른 34분에 드디어 아침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동해의 일출만큼이나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이다.


고요의 바다에 시 한수 읊어 내듯이 서서히 고개를 내밀며 아침을 열고 있는 왜목마을


왜목의 일출은 사진에서 왼쪽에 보이는 섬인 국화도 위로 뜨는 6월, 7월이 장관이며, 노적봉과 장고항 틈 사이, 사진에서 오른쪽 섬의 시작부분인 촛대바위 위로 떠오르는 12월, 1월이 가장 볼 만하다고 한다.


촬영시기가 3월이라 양쪽 포인트의 중간부분에서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왜목의 해변이 예쁜 이유는 저마다 다른 모양의 배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나에게는 기분 좋은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물이 점차 들어오면 바닥에 닿아 정지되어 있던 배들이 서서히 물에 동동 뜨면서 움직이는 모습도 재밌는 일이다.


바다의 일상이 그러하듯 해변과 고깃배, 코끝에 맴도는 짠내와 갈매기의 울음소리... 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바다를 찾게된다.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좋다. 날씨가 흐려 일출을 볼 수 없는 날이면 또 어떠한가...


해는 순식간에 떠올라 몇분만에 아침의 축제를 끝내고 만다. 날씨가 쌀쌀해서인지 일출을 보던 사람들이 모두 숙소(?)로 들어가거나혹은일찍떠나버렸다.


1. 모래위에 쓴 어느 연인들의 이름이 아침 햇살을 받고 있다.
2. 바다 안으로 길게 드리워진 선착장에서는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3. 석문산 앞에는 모래해변이 아닌 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 주변을 산책할 수 있다.
4. 신비스럽게 깎여있는 석문산, 이곳에 오르면 좀더 웅장한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딱히 할게없는 한적한 작은 어촌마을이지만 그래서 더없이 좋은 휴식이 되어주는 곳이 바로 왜목마을이란 생각이 든다.


고운 모래에 발이 폭폭 빠지는 느낌이 좋다. 함께 간 별란초님과 분신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최근에는 해안가에 커다란 목조다리가 신축되었다고 하는데, 그 너머로의 일출도 꽤 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다의 파도소리를 마치 노랫가락으로 표현한 것같아 기분이 좋아지는 데스크에 서면 차가운 바람마저도 향기롭게 느껴진다.
실치회와 뱅어포로 유명한 장고항 포구와 대호방조제 끝자락에 위치한 삼길포가 가까운 곳에 있으니 함께 들려보는것도 좋을 것이다.
의심했던 서해의 일출에 감동하며기운을온몸으로 느끼고 돌아간다.
여행으로의 즐거운 초대장 BayZer™


주변 여행지

장고항포구, 삼길포, 도비도 농어촌휴양지, 성구미포구

찾아가는 길

내비검색 : 왜목마을
주소검색 : 충청남도 당진군 석문면 교로리 844-4
서해안 고속도로 송악IC - 부곡, 고대공단(동부제강) - 현대제철 - 38번국도 종점에서 우회전 - 석문방조제 - 큰마섬교차로3거리에서 우회전 - 왜목터널 - 왜목마을

Posted by BayZ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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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28 18:51
    음....<br>또한번가고싶은 충동이....ㅋㅋ
    • 2012.03.28 21:11
      댓글 주소 수정/삭제
      음.. 벌써 1년...
  2. 2012.03.28 23:51
    앗.......저 점퍼...<br>별란초님 엠티 갔다고 자랑하실 때 나온 옷 같은데......ㅎㅎ~!!<br><br>왜목마을.....정말 볼 거 없죠?<br>가서 실망 많이 하고 왔어요<br><br>저 없는 사이에<br>사진 많이 포스팅 하셨네요.......ㅎㅎ~!!
    • 2012.03.29 20:27
      댓글 주소 수정/삭제
      정말 오랜만이네요<br>어디 다녀오셨나봅니다,,<br>몇 안되는 이웃인데 다시 뵙게되어 반갑군요^^
  3. 2012.03.31 09:30
    축하합니다~!! <br>파란 첫 페이지의 ‘오늘의 추천글’ 코너와 블로그 홈의 ‘추천글’로 선정되셨습니다.<br>http://blog.paran.com 그리고 http://www.facebook.com/paranblog 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br>앞으로도 파란블로그 많이 사랑해주세요^^*
    • 2012.03.31 19:43
      댓글 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ㆀ
  4. 2012.03.31 22:00
    멋져요<br>잘보고갑니다<br>블러그 초대해요
    • 2012.04.12 23:23
      댓글 주소 수정/삭제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5. 2012.05.23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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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은 조선 왕조를 대표하는 제일의 궁궐이다.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가 나라의 기틀을 새롭게 다지기 위해 가장 먼저 건립한 궁궐로서,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규모가 크고 격식도 매우 엄중하다. 찬란한 문화유산인 조선왕조 제일의 궁궐, 경복궁 (사적 제117호)을 만나본다.


경복궁 안내도 및 이동 동선

포스팅 순서는 이동 순서대로며, 그동안 찍어두었던 사진들을 종합하여 정리했습니다. 카메라 렌즈 특성상 사진의 왜곡된 부분이 있을수 있으며, 사진 관련내용은 여러 곳에서 참고했음을 밝힙니다.


장고는 궁중 연회나 제례에 쓰이는 장을 보관하던 곳이다. 북궐도형에는 함화당과 집경당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장고가 있는데, 이곳은 서쪽 장고로서 태원전과 경회루 사이에 위치한다.


예성문 (禮成門 Yeaseongmun)

장고로 들어가는 정문이다. 닫혀있어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일제강점기 때 훼손되었던 것을 2005년 태원전과 함께 복원했다.


장고 (醬庫 Janggo)

큰 잔치가 있을 때는 임시주방인 숙설소가 장고 가까이에 설치되었으며 장고마마가 장독들을 관리하였다.


장고

현재 장고의 모습은 발굴조사 결과에 따라 2005년에 복원한 것으로 경사지를 활용한 계단식 장독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시된 독은 2007년에 전국에서 수집한 것으로 우리나라 독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중궁전인 교태전 북쪽에는 흥복전과 여러 빈들의 거처인 후궁 영역이 있었다. 이 영역과 관련있는 내전 가운데 현재 남아있는 것은 함화당과 집경당 뿐이다.


향명문 (嚮明門 Hyangmyeongmun)

집경당의 남행각에 딸린 문이다.


향명문

향명문 안으로 집경당이 보인다.


봉양문 (鳳陽門 Bongyangmun)

집경당의 동쪽행각에 있는 문이다.


집경당 (緝敬堂 Jipgyeongdang)

전면 8칸으로 구성된 집경당은 서쪽행각에 이어진 복도를 통해 함화당과 연결되어 있다. 후궁 영역의 건물이라 정확한 용도가 불분명하지만, 고종이 건청궁에 머물 당시 이곳 집경당에서 간간이 외국 사신들을 접견한 기록이 남아있다. 돌출된 누마루에서 북쪽 향원정을 감상할 수 있다.


집경당 현판

'집경'은 계속하여 공경한다는 뜻으로 <시경>의 대아·문왕편에 나오는 집희경지(緝熙敬止)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복도각

집경당과 함화당, 두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높은 복도가 남아 있어서 원래 궁궐의 복잡한 통로 체계의 흔적을 보여준다.


복도각


계명문 (啓明門 Gyeamyeongmun)

함화당으로 들어가기 위한 동쪽담장에 있는 월문이다.


함화당 (咸和堂 Hamhwadang)

집경당의 서쪽에 위치한 건물로 복도각을 통해 집경당과 연결되어 있다. 건청궁의 장안당을 떠올리게 하는 구조다. 서쪽으로 누마루를 설치해 앞으로 돌출시켰으며, 그 우측으로 개방된 3칸에는 마루를 깔았다.


함화당 현판

'함화'는 모두가 화합한다는 뜻이다.


함화당

침전으로 사용된 건물로 정면 7칸, 측면 2칸의 규모다. 함화당 주변으로는 석화분에 놓인 수석들이 눈에 띈다.


함화당


함화당 누마루


함화당 주련


북쪽 담장

함화당의 북쪽 담장에는 굴뚝이 붙어있고 우측으로 창무문이 있다.


창무문 (彰武門 Changmumun)

창무문은 함화당 뒤뜰에서 향원정으로 나가게 된다. 집경당 북쪽에도 향원정으로 나가는 응복문이 있다.


하지

함화당 북쪽 창무문을 나오면 장방형의 조그만 돌 연못이 있다. 창무문 쪽에서 보면 앞면에 하지(荷池)라고 쓰여 있는데, '하지'는 연꽃이 있는 연못을 뜻한다. 모르고 지나칠뻔 했는데 다행히도 향원정 쪽에서 눈에 띄였다.


길었던 포스팅을 마치며...

나오는 길에 근정전 추녀마루 아래로 떨어지는 해를 본다. 경복궁의 또다른 아름다움이다.


지금까지 함께 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하루종일 만났던 추녀마루의 잡상도 이제는 그 고단함을 내려놓고편히 앉아 쉬는 듯 보이네요^^ 여행으로의 즐거운초대장.BayZer™


Posted by BayZ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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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25 08:23
    좋은글이라 담아갑니다 *^^*
    • 2012.03.28 21:06
      댓글 주소 수정/삭제
      황고수님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lt;br&gt;좋은하루 되세요^^
  2. 2012.04.11 22:46
    좋은글이라 담아갑니다 *^^*

경복궁은 조선 왕조를 대표하는 제일의 궁궐이다.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가 나라의 기틀을 새롭게 다지기 위해 가장 먼저 건립한 궁궐로서,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규모가 크고 격식도 매우 엄중하다. 찬란한 문화유산인 조선왕조 제일의 궁궐, 경복궁 (사적 제117호)을 만나본다.


경복궁 안내도 및 이동 동선

포스팅 순서는 이동 순서대로며, 그동안 찍어두었던 사진들을 종합하여 정리했습니다. 카메라 렌즈 특성상 사진의 왜곡된 부분이 있을수 있으며, 사진 관련내용은 여러 곳에서 참고했음을 밝힙니다.


1876년 경복궁에 큰 불이나자 고종은 창덕궁으로 옮겼다가 1888년에 다시 경복궁으로 돌아와 주로 건청궁에 기거했다. 이미 창덕궁에 지어졌던 집옥재, 협길당 등을 1891년에 건청궁 서편으로 옮겨 와 주로 서재와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했다.


집옥재 일원

집옥재는 양 옆벽을 벽돌로 쌓고 내부를 중2층으로 만들었으며, 서쪽으로는 팔각형의 2층 정자인 팔우정이 이어져 있고, 동쪽으로는 협길당이 이어져 있다. 이 건물들은 중국풍의 요소들이 많이 섞여 궐내에서 이국적인 지역을 형성하였다.


집옥재 (集玉齋 Jibokjae)

집옥재는 고종이 서재로 사용하던 곳으로, 실제 이곳에 보관하던 책들은 4만권에 이르렀다고 한다. 원래는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으로 지어졌으나 1888년 고종이 거처를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옮기면서 그때 함께 이전되었다. 또 이곳에서 고종은 영국, 일본, 오스트리아 등 외국 사신들을 맞이하기도 했다.


집옥재의 월대

정면에는 월대를 두었으며 가운데에 9층의 계단을 놓았다. 네 마리의 석수가 길게 엎드려 있는 특이한 모습으로, 방긋 웃고 있는 듯한 얼굴이 찾는이로 하여금 미소짓게 만든다.


서수상

툭 불거져 나온 동그란 두눈의 서수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린채 앉아있다. 오른쪽에 것도 똑같이 앉아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모습이다.


답도

가운데 계단인 어계에는 봉황이 아닌 용을 새긴 답도를 놓았다. 이것도 중국풍의 영향을 받은 듯 하다.


집옥재 현판

옥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의 집옥재는 현판이 특이하게 세로로 걸려 있는데, 중국 북송 때의 서예가이자 명필인 미불의 글씨를 집자하여 중국풍으로 만든 것이라 한다.


내부

집옥재는 앞면 5칸, 옆면 3칸의 규모로 지어졌다. 그중 대청은 앞면 3칸, 옆면 2칸에 마루를 깔았다. 대청과 퇴 사이에는 빗살을 정교하게 짠 분합문을 달았다. 그 위에는 호사스러운 무늬들로 치장하였다.


봉황 문양

대청의 툇마루 왼쪽벽에 있는 봉황의 모습이다. 짙은 채색으로 화려한 모양을 하고 있다.


봉황 문양

툇마루 오른쪽 벽에도 눈 주위의 채색과 꼬리 모양이 틀린 같은 문양이 있다. 천장에는 용이 있다고 하는데 나중에야 알았다. 구석구석 찾아보면 집옥재는 지금까지의 전각들과 비교해볼때 다른게 너무도 많다는걸 점점 알게 된다.


용두장식

용두의 모양도 특이하게 청룡을 얹었는데 긴 수염과 뿔, 날카로운 이빨까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주련의 순서


집옥재의 주련

灑潤含膏 雲氣多壽 (쇄윤함고 운기다수) : 촉촉히 젖어 기름지니 운기는 장수하게 해주고,
稱物納照 鏡心彌光 (칭물납조 경심미광) : 만나는 사물마다 비추어 주니 거울은 더욱 밝도다.


玉樹陵霄 雲煙煥采 (옥수능소 운연환채) : 아름다운 나무가 하늘에 솟으니 안개구름 찬란히 빛나고,
寶花留硏 筆墨生香 (보화류연 필묵생향) : 귀한 꽃이 벼룻가에 머무늬 필묵에 향기가 나도다.


西山朝來 致有爽氣 (서산조래 치유상기) : 서산에 아침이 되니 상쾌한 기운이 이르고,
太華夜碧 人聞淸鐘 (태화야벽 인문청종) : 태화산에 밤 깊으니 맑은 종소리를 듣도다.


협길당 (協吉堂 Hyeopgildang)

집옥재 동쪽에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는 전각으로서 집옥재와는 다르게 우리 고유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집옥재의 처마가 일직선으로 되어있는 반면 협길당은 단아하면서 기품이 느껴지는 팔작지붕으로 부드럽게 늘어져 곡선미를 보여준다.


협길당 현판


협길당

집옥재와 복도각을 통해 하나의 내부로 연결되어 있는 협길당은 전면 5칸 규모로 2,3번째 칸은 개방된채 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온돌이 설치되어 있고 고종의 침전으로 사용된 건물로 여겨진다.


복도각

집옥재와 협길당을 하나로 이어주는 복도각으로, 유리를 사용한 창이 협길당의 문과 대조를 이룬다. 그 밑으로는 드나들수 있는 쪽문을 만들었다.


복도각 뒷면

뒤에서 보니 참 애매해진다. 창호지를 바른 문과 유리가 달린 창, 그리고 벽돌을 쌓은 높은 벽... 하지만 이것도 한 시대를 대표했던 건축물이었다는걸 잊지는 말아야겠다.


집옥재 동쪽 벽

당시로서는 신식인 중국풍의 서양식으로 지은 것이라 양식과 자재면에서 최신식이었을텐데, 지금 이렇게 올려다보는 느낌은 많은 괴리감이 들게 한다.


협길당 뒷면


집옥재 뒷면

뒷면 역시 벽돌벽이며 가운데에 만월창을 달아 석재로 테를 둘렀다. 만월창 양쪽으로 두 개씩 아치형의 반월창을 냈다


협길당과 집옥재


만월창

당연히 유리인줄 알았는데 유리가 아니었다.


아궁이


팔우정

팔우정은 팔각형의 2층 정자로서 집옥재의 좌측에 복도를 통해 하나의 내부로 연결되어 있다. 8개의 돌기둥 위에 세워져 있으며 1층에는 평난간을, 2층에는 계자각 난간을 설치해 변화를 주었다.


팔우정

난간 위에는 다시 둥근 돌난대를 돌렸으며, 처마 아래에도 낙양각을 드리웠고, 팔모지붕 꼭지에는 절병통으로 마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마음껏 치장한 정자이다. 팔우정 뒤쪽으로 신무문이 보인다.


팔우정 복도각

팔우정은 복도에 있는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 툇마루에 접근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향원정이 1층 툇마루에서 바로 2층 툇마루로 올라갈 수 있는 것과 다른 점이다.


팔우정


광임문 (廣臨門 Gwangimmun)

집옥재에서 서쪽 광임문을 통과하면 경복궁의 북쪽문인 신무문으로 갈 수 있다. 신무문을 나가면 청와대를 볼 수 있으니 그냥 지나치지 말고, 청와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보자.


신무문 (神武門 Sinmumun)

신무문은 경복궁의 북문으로 1443년 (세종 15년)에 건립되었다. 신무문의 명칭은 세종이 명하여 집현전에서 지은 것으로 현판은 이현직이 썼다. 조선시대에는 북악산의 성난 기운을 막기위해 늘 닫아두었다고 한다. 신무문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때는 관람권만 보여주면 된다.


신무문 천장

천장에는 화려한 문양의 현무가 그려져 있다. 신무문 쪽은 인적이 드물었으나 왕이 공신들의 충성을 다짐하는 모임이 있는 회맹제에 참석할 때는 이 문을 이용 하였으며, 영조 때에는 숙빈 최씨를 모신 육상궁에 참배하기 위해 신무문을 자주 이용했다고 한다.


신무문

1961년 5.16 군사정변 후 당시 박정희 정권은 대통령 경호를 빌미로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수도경비 사령부 30경비단을 주둔시키며 신무문을 한때 폐쇄하기도 했었다. 45년 후인 2006년 노무현 대통령때 다시 개방되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청와대

신무문을 나오면 북악산 앞으로 대통령의 관저인 청와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많은 사람들이 몰리다보니 경호에 상당한 신경이 쓰이겠다 싶었다.


청와대

2층의 화강암 석조에 청기와를 덮어 청와대라는 명칭이 유래했다고 한다. 이곳은 일찍이 고려시대에 남경으로서의 별궁이 있던 터였으며, 조선시대 세종8년에는 이곳에 연무장, 융무당, 경농재 및 과거장이 마련되었고, 일제 때는 총독관저가 지어진 곳이다. 1993년 8월 김영삼 전대통령의 지시로 조선총독이 기거하였던 구관이 철거되었다.


왕과 왕비가 죽으면 빈전(殯殿)에 관을 모시고, 교외에 마련된 산릉에 시신과 관을 묻은 후에는 혼전(魂殿)에 신주를 모셔 정해진 장례기간을 치룬 후에 종묘로 신위를 옮겨 모시게 된다. 태원전은 경복궁의 빈전으로 건립되었다.


일중문 (日中門 Iljungmun)

신무문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장고에서 우측으로 가면 태원전이 있다. 장고, 향원정, 집옥재 등 태원전의 동쪽에서 오게되면 첫 번째로 만나게되는 문이다. '해가 하늘 한가운데 온다'는 뜻으로 일제 강점기에 훼손된 것을 2005년 복원하였다.


태원전 담장

일중문에서 본 담장으로 안과 밖에는 푸른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태원전 일원

일중문을 들어서면 태원전 영역의 건물들과 담장들이 보인다. 태원전 주변으로 공묵재, 영사재 등 상례용 건물들이 들어서 일곽을 이루고 있는데, 이곳은 일제강점기때 철거를 겪고 한때 청와대 경호부대가 주둔하는 등 변화를 겪었다. 2006년 이 일원의 복원공사가 마무리되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태원전 우물

태원전에는 총 3개의 우물이 있다. 그중 하나는 태원전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일중문을 들어서면 보인다.


건숙문 (建肅門 Geonsukmun)

태원전으로 들어가는 남쪽의 첫 번째 문으로 2005년에 복원되었다. 1872년 (고종9년) 영희전에 있던 어진을 태원전으로 이봉할 때 건숙문을 내외의 신문으로 삼았다.


건숙문

엄숙함을 세운다는 뜻의 건숙문은 태원전으로 가는 첫 문이기 때문에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엄숙함을 강조한 듯 보인다. 삼문형식의 이 문을 들어서면 경안문이 있다.


경안문 (景安門 Gyeonganmun)

건숙문을 지나 만나게되는 두 번째 문으로 삼문 형식이며, 경안문에서 태원전까지 행각으로 이어져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경안문

'경안'은 크게 평안하다는 뜻이다.


경안문

경안문에서 태원전 앞까지 사각 전돌을 깔고 그 위에 맛배지붕을 얹은 행각을 연결했다. 단정하고 엄숙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태원전


태원전 (泰元殿 Taewonjeon)

경복궁의 서북쪽 일대는 빈전(殯殿)이나 혼전(魂殿), 영전(靈殿) 같은 제사와 관련된 전각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빈전은 왕실에 돌아가신 분이 있을 때 관을 모셔두는 곳이고, 혼전은 종묘에 모실 때까지 만 2년 동안 위패를 모시는 곳이며, 영전은 돌아가신 분의 초상화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태원전은 국상을 치르는 동안 상여가 나가기 전까지 관을 모셔두었던 빈전으로 사용되었으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셔두기도 하였다.


태원전 현판

'태원'은 하늘을 뜻한다. 국장때 시신을 안치하는 곳이므로 '하늘'이라는 존칭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태원전

이곳은 궁의 서북쪽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지어졌으며 20세기 초에 철거되었다가 2005년에 옛 모습대로 다시 복원되었다.


태원전


태원전 합각


건길문과 영사재

태원전 동쪽으로 이어지는 영사재는 건길문을 통해 들어가도록 구분을 두었다.


건길문 (建吉門 Geongilmun)

영사재로 들어가는 문으로 2005년 태원전을 복원하면서 만들어졌다. '건길'은 복을 세운다는 뜻으로 고종 때 중건 당시 만들어진 현판을 달았다. 동쪽에서 영사재로 들어가는 문인 대서문이 안쪽 우측에 있다.


영사재 (永思齋 Yeongsajae)

태원전 동쪽에 붙어있는 건물로 내부가 통하는지는 모르겠다. 기단을 태원전보다 낮게하여 격식을 낮추었으며, 상례용 건물로 쓰였다. 정면 6칸중 가운데 2칸은 개방된 마루로 만들었다.


영사재 현판

'영사'란 오래도록 생각하고 가슴속에 새겨둔다는 뜻으로 돌아가신 분을 오래도록 그리워함을 나타냈다.


대서문 (戴瑞門 Daeseomun)

영사재로 들어가는 동쪽 문으로 '대서'란 상서로움을 간직한다는 의미이다. 2005년 태원전을 복원하면서 같이 만들었으며 고종 때의 현판을 달았다.


남쪽 행각

태원전의 남쪽 행각으로 경안문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행각에 경사합이 있고, 다시 북쪽으로 꺽어지는 부분에 유정당이 있다.


경사합 (敬思閤 Gyeongsahap)

태원전 남쪽 행각의 건물로 2005년 태원전을 복원하면서 함께 만들어졌다. '경사'란 공경히 생각한다는 뜻으로 돌아가신 분을 공경히 생각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정당 (維正堂 Yujeongdang)

태원전 동쪽행각의 건물로 2005년에 복원되었다. '유정'은 바른 마음을 가진다는 뜻으로 심신을 바르게 하여 돌아가신 분을 생각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태원전 남쪽 행각

경안문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행각의 모습.


공묵재 (恭默齋 Gongmukjae)

태원전의 남쪽 첫 번째 문인 건숙문 우측으로 공묵재의 남쪽담장이 이어지며 그 안에 공묵재가 자리잡고 있다. 고종은 태원전 재실인 공묵재에 머물면서 신하들을 만나보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2005년 태원전을 복원할 때 같이 복원하였다.


공묵재와 보강문 (保康門 Bogangmun)

건숙문에서 동쪽으로 들어서면 보강문이다. 일중문으로 들어올때는 홍경문을 통하면 공묵재로 갈 수 있다.


숙문당 (肅聞堂 Sukmundang)

태원전 서북쪽 담장 끝에 있는 3칸짜리 집이다. '숙문'이란 엄숙하게 듣는다는 뜻으로 혼령의 말씀을 엄숙하게 듣는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다음은 함화당과 집경당에 대하여...


Posted by BayZ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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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25 08:24
    좋은글이라 담아갑니다 *^^*
  2. 2012.04.11 22:45
    좋은글이라 담아갑니다 *^^*

경복궁은 조선 왕조를 대표하는 제일의 궁궐이다.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가 나라의 기틀을 새롭게 다지기 위해 가장 먼저 건립한 궁궐로서,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규모가 크고 격식도 매우 엄중하다. 찬란한 문화유산인 조선왕조 제일의 궁궐, 경복궁 (사적 제117호)을 만나본다.


경복궁 안내도 및 이동 동선

포스팅 순서는 이동 순서대로며, 그동안 찍어두었던 사진들을 종합하여 정리했습니다. 카메라 렌즈 특성상 사진의 왜곡된 부분이 있을수 있으며, 사진 관련내용은 여러 곳에서 참고했음을 밝힙니다.


후궁영역의 뒤 정원으로 만들어진 연못 안에는 원래 취로정이 있었는데, 건청궁을 창건하면서 그 자리에 향원정을 새로 지어 건청궁의 앞 정원이 되었다.


향원정으로 가는길

자경전을 나와 북쪽방향으로 가는길은 시야가 넓게 트인 잔디밭 길이다. 우측으로 국립민속박물관의 상징적인 탑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이렇게 잔디밭이 있다. 사진 우측에 보이는 담장은 함화당의 남쪽 담장이다.


향원정 (香遠亭 Hyangwonjeong)

향원정은 1873년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새롭게 조성된 것으로, 부정형의 연못에 둥근 인공의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육모 지붕을 얹은 2층 정자를 세웠다.


향원정

향원정은 '향기가 멀리 퍼져 나간다'는 뜻으로 그 이름에서 향원지 연못에 원래 연(꽃)이 심겨져 있었음을 알수 있다. 경회루가 외국 사신과 군신들의 연회장소였다면 향원정은 왕실가족들의 사적인 휴식공간이라 할 수 있다.


향원정

현존하는 6각형의 중층정자로는 향원정이 유일하다고 한다. 1층과 2층 모두 툇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는데 2층의 난간이 더 멋스럽다. 2층 6개의 기둥에는 하얀색 바탕에 글씨를 써넣은 주련을 걸었다.


취향교

향원정으로 가는 섬에 나무로 구름다리를 놓아 '향기에 취한다'는 뜻의 취향교를 만들었다. 원래 취향교는 북쪽으로 다리를 놓아 향원정 뒤쪽으로 보이는 건청궁에서 건널 수 있게 만들었으나 한국전쟁 때 이 다리가 불타 없어진후 현재는 남쪽으로 놓여 있다.


향원정과 취향교

향원정에서 내려오는 계단과 직선으로 되어있지 않고 우측으로 많이 틀어진 각도로 취향교가 놓여있다. 뒤로는 건청궁의 건물들이 보인다.


향원정의 풍경




시무나무

'시무'란 옛말로 20을 뜻하며 이정표로서의 기능을 하여 이 나무를 20리목이라고 불렀다. 향원전 서쪽에 심어져 있다.


열상진원 샘

열상진원은 향원지의 근원이 되는 샘물로, 전면에 '한강의 진짜 근원'이라는 뜻의 열상진원이 새겨져 있다. 한강의 근원은 우리가 알다시피 강원도 태백에 있는 검룡소이다. 하지만 왕궁에서 흘러나온 물이 한강으로 유입된다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이곳을 진원이라고 표시한 것이다.
이 샘은 경복궁 창건 당시부터 있던 왕궁의 샘으로 옛날부터 물이 맑고 차서 음료수로 이용하였다. 글을 새긴 우물 뚜껑은 1868년 경복궁 중건 때 만든 것이다. 샘에서 솟아난 물이 두 번 직각으로 꺾여서 연못으로 잔잔히 흘러들도록 만들었는데 이것은 향원지에 드리워진 정자와 꽃나무의 그림자가 물결에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비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꺾어지는 수로는 둥근 돌로 통로를 만들어 흐르는 물이 더욱 생기를 띠게 한다.


한국의 전기발상지

향원정의 북쪽, 건청궁 앞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전깃불을 사용하여 어두운 밤을 밝혔던 곳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 유학생 유길준이 조선으로 돌아와 고종에게 어두운 밤을 대낮같이 밝게 해주는 전구를 알리고, 고종의 어명으로 건청궁 앞에 있는 향원지의 물을 끌어들여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를 지었다. 이때 전기공사는 미국의 에디슨 전기회사가 맡았다. 경복궁에 전깃불이 들어온 것은 1887년 3월 6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이었고 일본과 중국보다도 2년 정도 빠른 것이라고 한다.


향원정

건청궁 앞에서 바라본 향원정의 모습..


향원정과 건청궁


경복궁 중건사업이 끝난 이듬해인 1873년, 고종은 경복궁 북쪽 동산정원인 녹산과 향원정 사이에 건청궁을 건립케 하고 명성황후와 기거하였다.


건청궁 (乾淸宮 Geoncheonggung)

경복궁에서 가장 북쪽 한적한 곳에 위치한 건청궁은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섭정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을 상징하는 건물로 고종과 명성황후가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면서 거처할 목적으로 지어졌다. 향원지를 앞으로 두고 건청궁 입구가 있다.


인유문 (麟遊門 Inyumun)

건청궁 정문에서 동쪽으로 있는 녹산으로 들어가는 문이지만 현재는 잠겨 있다.


남쪽 행각

건청궁은 궁궐의 침전과는 달리 양반가옥 살림집을 응용하여 사랑채(장안당), 안채(곤녕합), 그리고 부속건물(복수당)과 행각으로 구성되었다. 그 규모는 양반가옥 상한선인 99칸의 2.5배 되는 250칸이며, 화려하고 섬세한 치장을 가미하여 지었다.


초양문 (初陽門 Choyangmun)

정문을 들어선 후 좌측으로 장안당으로 통하는 초양문이 있다. 장안당의 동쪽 담장에 딸린 문으로 곤녕합의 남행각과 이어진다. 곤녕합으로 가려면 함광문으로 들어서야 한다.


함광문 (含光門 Hamgwangmun)

곤녕합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함광'이란 빛을 머금고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함광문 안으로 옥호루가 보인다.


곤녕합 (坤寧閤 Gonnyeonghap)

건청궁 내에 있는 왕비의 숙소로 구조가 복잡하게 되어있다. 총 16칸으로 좌측에는 서행각이 붙어있으며, 정면 동쪽끝에 1칸은 옥호루라는 편액이 붙어있다. 바로 옆으로 돌면 사시향루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옥호루와 어떻게 구분되는 것인지 궁금한 부분이다. 그 옆으로 앞면2칸, 옆면2칸으로 이어져있는 정시합이라는 방이 동북쪽으로 돌출되어 있다.


곤녕합 현판

'곤녕'은 '땅이 편안하다'는 뜻으로 왕비의 덕성을 나타냈다. 현판 우측에는 임금의 글씨를 뜻하는 어필(御筆)이 전서로 새겨져 있고 좌측에는 고종의 낙관인 '주연지보'와 그 아래 '만기지가'라는 낙관이 새겨져 있다. '어필현판첩'에 고종의 친필로 된 곤녕합 탁본이 수록되어 있다.


곤녕합과 옥호루

곤녕합 동쪽으로 이어지는 끝에 정면1칸의 누각 이름이 옥호루다. '옥호'는 '옥호빙'의 준말로 옥병 안에 든 얼음이라는 뜻이며 깨끗한 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각 기둥에는 주련이 걸려 있다.


옥호루 (玉壺樓 Okhoru)

이곳은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한데, 1895년 을미사변 때 일본이 궁궐을 습격해 명성황후를 시해한 곳이 바로 곤녕합의 누마루인 옥호루였다. 명성황후의 시신은 옥호루에 잠시 안치되었다가 건청궁의 뒷산인 녹산에서 불태워진 후 재는 향원정 연못에 뿌리고, 타다남은 시신은 녹산에 묻었다고 한다.


옥호루

이 사건 이후 건물은 주인을 잃은채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1909년 일본에 의해 한국 근대사의 비극을 간직한 옥호루는 결국 헐려 버리고 말았다. 광복 후 건청궁 자리 동쪽에 명성황후가 난을 당한 곳이라는 뜻의 '명성황후조난지지(明成皇后遭難之地)'라는 표석이 세워지게 되었다.


사시향루 (四時香樓 Sasihyangru)

옥호루의 동쪽에 달린 현판 이름으로 사계절 끊이지 않고 꽃향기가 풍긴다는 의미이다. 옥호루와 같은 공간인지는 문이 닫혀 있어 알수가 없다. 이 안에 명성황후의 초상이 있다고 한다.


사시향루

곤녕합 북행각 쪽에서 본 모습으로 장대석 위에 누각을 세웠는데, 아랫부분 (소화기가 놓여있는 부분)을 막아놓은 것은 아궁이가 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실제로 문을 열면 아궁이가 있다.


곤녕합의 주련

陌上堯樽傾北斗 (맥상요준경북두) : 밭두둑의 요 임금 술잔은 북두를 기울게 하고,
樓前舜樂動南薰 (누전순악동남훈) : 누각 앞의 순 임금 음악은 남쪽 훈풍 불어오게 하네.


곤녕합의 주련

天門日射黃金榜 (천문일사황금방) : 황금 문엔 햇빛이 황금 편액을 비추고,
春殿晴曛赤羽旗 (춘전청훈적우기) : 봄 전각엔 저녁 해가 적우기를 비추네.


곤녕합의 주련

雙闕瑞煙籠菡窞 (쌍궐서연농함담) : 대궐의 상서로운 연기는 연꽃을 감싸고,
九城初日照蓬萊 (구성초일조봉래) : 도성의 아침 해는 봉래궁을 비추도다.


정시합 (正始閤 Jeongsihap)

정시합은 침방으로 곤녕합 동북쪽에 돌출된채로 이어져 있다. 곤녕합 뒷면에서 본 모습으로 툇마루가 연결되어 있다.


정시합


내부모습


내부모습


녹금당 (綠琴堂 Nokgeumdang)

곤녕합의 북쪽, 복수당의 서행각에 있는 건물로 푸른 숲이 내는 아름다운 소리를 비유해 '녹색의 거문고'라는 뜻의 이름을 가졌다. 우측에 보이는 곤녕합 북쪽담장에 굴뚝이 붙어있다.


녹금당

녹금당과 곤녕합 북쪽 담장 사이 좁은길로 들어가 문을 하나 통과하면 우측으로 복수당이 자리해 있다. 좌측은 녹금당에서 이어지는 복수당 서행각이다.


복수당 서행각

녹금당에서 문을 하나 통과해 들어온후 돌아본 모습으로 정면에 곤녕합의 뒷면이 보이고, 우측으로 복수당 서행각이 위치해 있다.


복수당 (福綏堂 boksudang)

곤녕합 북쪽에 자리잡은 부속건물로 '복록을 받아 편안하다'는 뜻의 이름이다. 복수당 서행각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녹산으로 나가는 문이 있으나 잠겨 있다.


담장과 녹산

복수당 북쪽 담장과 건청궁 북쪽담장 사잇길에 서면 담장 넘어로 나즈막한 녹산이 보인다. 이 담장은 복수당을 감싸며 동쪽으로 두 개의 문을 내고 곤녕합의 동행각과 이어지는데, 명성황후의 흔적이 녹아있는 녹산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은 모두 잠겨있어 출입 자체가 금지된 듯 보였다.


관문각지 (觀文閣地 Site for Gwanmungak)

이곳은 1873년 (고종10년)에 건립된 관문각이 있던 터이다. 건청궁 내 장안당 뒤쪽에 위치한 관문각은 당초에 관문당으로 불렸으나, 고종 12년에 어진을 봉안하고 관문각으로 이름을 고쳤다. 현재는 공터로 남아있고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장안당의 북행각이다.


관문각

1891년 (고종28년)에 러시아 건축가 세레친 사바틴(A.S.Sabatine)과 친군영이 공사를 맡아 2층 (일부3층)의 서양식 건물로 개축되었다. 최초의 양관으로 불리기도 한 이 건물은, 국왕의 서재 겸 집무실인 집옥재와 대조를 이뤘다. 고종은 이곳에서 미국, 영국, 러시아 등의 공사들을 접견하면서 여러 정치적인 문제들을 처리해야 했다.

사바틴이 관문각에 기거하다가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목격하여 고발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관문각이 헐린 시기는 1901년 (광무5년) 이후로 보인다.


장안당 (長安堂 Jangandang)

건청궁의 사랑채에 해당하는 장안당은 고종의 생활공간이었다. 건청궁이 건립된지 3년이 지난 1876년, 경복궁에 큰 불이 나자 고종은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1885년에 다시 건청궁으로 돌아와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할 때까지 10여 년간 줄곧 이곳에서 지냈다.


장안당 현판

'장안'이란 오랫동안 평안하게 지낸다는 뜻으로, 현판 오른쪽에는 임금의 글씨를 뜻하는 어필(御筆)이 새겨져 있고, 좌측에는 고종의 낙관인 '주연지보'와 그 밑에 '만기지가'라는 낙관이 새겨져 있다. 장안당의 고종 친필 탁본이 '어필현판첩'에 수록되어 있다.


장안당

건청궁의 중심건물인 장안당은 ┣ 자 형태로 앞면 6칸중 가운데 3칸을 대청으로 만들고 왼쪽2칸, 오른쪽1칸은 방으로 만들었다. 서쪽으로는 추수부용루라는 누마루를 만들어 앞으로 돌출시켰으며 뒤로는 2x2칸의 침방인 정화당이 있다. 가운데 3칸 마루에는 고종이 앉아서 집무를 보던 어좌와 일월오악도가 있지만 문이 닫혀있어 볼수는 없었다.


장안당과 추수부용루

장안당은 궁궐 전각을 상징하는 추녀마루의 잡상도 두지 않았고, 어좌를 둔 왕의 생활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답도 또한 두지 않았다. 일반 사대부집의 사랑채와 비슷하게 지은만큼 서쪽의 누마루인 추수부용루도 구한말 유행했던 한옥양식으로 지어졌다.


추수부용루 (秋水芙蓉樓 Chusubuyongru)

장안당을 돋보이게 하는 건물이 바로 추수부용루다. '추수부용'은 가을 물속의 연꽃이란 뜻으로, 물속에 떠있는 수려한 자태의 연꽃마냥 높은 돌기둥이 떠받치고 있어 위에 떠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한다.


추수부용루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을 닮은 추수부용루의 추녀가 위로 둥글게 휘어져 올라가 있다.


매화나무

사군자의 첫머리에 들어가는 매화는 옛 선비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나무였다. 대표적으로 퇴계 이황은 매화 사랑이 얼마나 각별하였던지 죽음을 맞는 마지막 순간에도 매화 물 주기를 걱정할 정도였다고 한다. 봄의 전령답게 가장 일찍 꽃피는 매화가 장안당 남쪽담장 앞에 심어져 있으며 그 옆으로는 괴석들이 놓여있다. 관람객들이 빠져나가는 문은 초양문이며 왕비의 침전인 곤녕합으로 통한다.


필성문

장안당 서쪽담장에 있는 문으로 벽돌을 쌓아 만든 월문이다. 장안당을 나와 밖에서 보면 필성문이라는 글씨가 가운데 새겨져 있고, 양쪽으로는 불로초를 입에 문 학이 새겨져 있다.


서쪽담장

필성문에서 본 장안당 서쪽담장으로 취규문과 관명문이 북행각과 함께 보인다.


집옥재와 건청궁은 이렇게 작은 수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좌우로 배치되어 있다. 집옥재와 관문각 사이에는 서양식 기계추 시계탑이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다음은 집옥재와 태원전에 대하여...

Posted by BayZer™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2012.03.25 08:24
    좋은글이라 담아갑니다 *^^*
  2. 2012.04.11 22:44
    좋은글이라 담아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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