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6 자경전과 십장생굴뚝

2012. 3. 23. 20:51+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문화유산 답사기

[조선 왕조 제일의 궁궐을 만나다]
경복궁 #6 자경전과 십장생굴뚝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 종로

Photographed by BayZer™

2012.03.03

 

 

 

경복궁 현황도

 

 

 

자경전 (慈慶殿 Jagyeongjeon)

 

헌종(24대 왕)의 어머니인 신정왕후 조대비는 고종(26대 왕)의 즉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에 보답하여 흥선대원군은 조대비를 위한 거처를 궁 안에서 가장 화려하고 섬세하게 만들었다.

 

 

안내도
교태전 후원인 아미산과 자경전 사이에는 넓은 공터가 있다. 이곳은 교태전의 동소침인 인지당 터였다고 한다.
안내도를 바라보는 현 위치에서 좌측이 아미산, 우측으로 가면 자경전이다. 나무 그늘 아래 쉼터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쉬어가는 곳이다.

 

 

자경전 꽃담
나무그늘 아래에서 동쪽으로 바라본 자경전의 모습으로, 품위있어 보이는 자경전의 서쪽 담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문인 만세문은 담장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있지만 아미산에서 나오면 서쪽문으로의 출입이 수월하다보니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자경전 출입에 서쪽문을 이용한다. 그 앞에 서있는 나무는 살구나무라고 한다.

 

 

자경전 꽃담
자경전 십장생 굴뚝과 함께 자경전을 돋보이게 하는게 바로 서쪽 담장인 꽃담이다.
이 꽃담에는 여러 꽃나무들과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문자들을 새겨 넣어, 나이 든 대비전 주인의 장수를 기원했다고 한다.

 

 

매화, 천도, 모란, 석류, 국화, 대나무, 나비, 연꽃 등을 색깔있는 모양벽돌로 장식하여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준다.
왼쪽부터 오른쪽 방향으로 하나하나 살펴보면...

 

 

매화, 천도
둥근달 아래 새 한 마리가 매화나무에 앉아있다. 매화는 순결한 감각을 지닌 미녀를 상징한다.
천도는 신선이 먹는 신성한 과일로, 옛부터 섣달그믐의 구나(驅儺: 역귀를 쫓는) 행사 때 복숭아 가지로 비를 만들어 잡귀를 쫓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었다.

 

 

모란, 석류
모란은 풍성하고 농염한 모습이 덕스럽고 복이 있는 절세미인에 비유되며, 여러그루가 어루어져 함께 피어있는 모습은 화목을 상징한다. 석류는 껍질속에 알맹이가 소복하고 임산부가 찾는 신맛에 부합하므로 자손의 번성을 의미한다.

 

 

꽃과 나비, 국화
꽃잎이 풍성한 아름다운 꽃으로 나비가 찾아드는 모습은 남녀결합의 의미와 함께 행복을 상징한다.
국화는 맑은 향과 높은 절개를 지닌 꽃으로 고결한 품격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꽃과 나비, 대나무
대나무는 매화, 소나무와 더불어 추운 겨울을 꿋꿋하게 견뎌내는 세한삼우, 매란국죽의 하나로 군자의 표상으로 삼았다.
민간에서는 대를 태울 때, 마디 튀는 소리에 잡귀가 놀라 도망간다하여 정초에 대를 태우는 풍습이 있었다.

 

 

석쇠무늬와 꽃
서쪽 담장에 딸린 문 바로 좌측에 그물처럼 육각형의 테두리를 만들고 그 안에 다양한 꽃과 나비를 새겨 넣었다.
이와 같은 무늬를 석쇠무늬라 하는데, 석쇠무늬 속의 꽃은 행복을 상징한다.

 

 

자경전 (慈慶殿 Jagyeongjeon)
자경전은 보물 제80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복궁 침전 동쪽 터에 자리했다. 철종이 승하한 뒤 고종에게 왕위를 잇게하고 흥선대원군의 집권을 가능하게 한 신정왕후 조대비에 보답하고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1865년 (고종2년)에 고종의 양모가 되었던 조대비를 위하여 지은 대비전이다.

 

 

자경전 현판
자경은 '어머니께서 복을 누린다'는 뜻으로 현판의 글씨는 고종 때 대사헌 등을 지낸 성이호가 썼다.
자경전이라는 명칭은 정조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창덕궁에 자경전을 건립하면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자경전의 전경
자경전은 중심건물 외에도 동쪽으로 청연루와 협경당을 이어붙이고 서쪽으로 복안당을 연결해 교태전과 비슷한 구도를 갖추고 있다. 정면 10칸의 규모인 자경전은 낮시간에 거처하던 공간으로 가운데 3칸에는 마루를 깔았다.

 

 

자경전 용마루
자경전은 다른 전각들과 비교해 더 높은 용마루를 두었다. 청연루와 직각으로 붙어있는 협경당까지 높은 용마루를 볼수 있다.

 

 

자경전 잡상
용두 앞에 다른 전각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적은 4개의 잡상을 세웠다. 청연루에는 3개의 잡상이 세워져 있다.

 

 

자경전 합각
자경전의 합각에는 다른 전각들과는 달리 문자를 새기지 않았다. 무시무종의 네모 틀안에 팔각무늬와 원무늬를 조화롭게 상감해 그 모양마저 여느 침전과는 다르게 품위있는 차별을 두었다.

 

 

좌측에서 본 자경전
자경전은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화재로 전소되고 말았는데, 1888년 (고종25년)에 다시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침전 가운데 옛 모습을 간직한 유일한 건물이다.

 

 

동물상
자경전 앞 계단 옆에는 긴 장대석 위에 앉아있는 동물상이 있다. 오랜세월 이곳에서 홀로 자경전을 지키고 있는 듯 하다.

 

 

청연루 (淸?樓 Cheongyeonru)
자경전 우측에는 청연루라는 누각이 연결되어 있다. 높직한 돌기둥이 받치고 있는 누마루는 정면 1칸, 측면 2칸으로 자경전보다 앞으로 돌출되어 있으며, 지붕에는 취두와 용두, 잡상을 얹었다.

 

 

청연루 현판
'청연'은 '맑고 한가함', 또는 '조촐한 연회'를 뜻하며 문헌에 따라 청연루(淸燕樓)로 표기한 곳도 있다.

 

 

청연루 누각
자경전 서북쪽의 온돌방인 복안당이 겨울용 침전이라면, 이 청연루는 여름용 거실이라 할 수 있다.
누각의 띠살문을 모두 열면 여름에 시원하게 지낼 수 있게 바닥은 마루로 만들어졌으며 뒷면에는 쪽마루를 두었다.

 

 

협경당 (協慶堂 Hyeopgyeongdang)
자경전 동쪽에 있는 보조 건물로 정면 6칸, 측면 2칸인 협경당은 상궁과 시녀들이 기거하던 곳이다. 청연루의 동쪽에 연결되어 있다.

 

 

협경당 현판
함께 경사를 누린다는 뜻으로 경(慶)은 '복'으로 해석된다.

 

 

협경당 일각문
전면에는 담을 쌓고 문을 만들어 출입할 수 있게 하여 자경전과 구분을 두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기단의 높이가 자경전 보다는 낮고, 지붕의 용마루 또한 높이를 낮게하여 자경전보다 격식을 낮추었다.

 

 

자경전 살구나무
협경당 건물을 돌아 뒤로 가보면 북쪽 담장 앞에 연한 붉은색 꽃이 잎보다 먼저 피는 키 큰 살구나무 한그루가 뒤뜰을 지키고 있다.

 

 

자경전 뒤뜰
자경전이나 협경당의 구분없이 한 공간의 뒤뜰을 이루고 있다. 북쪽 담장에는 대비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 굴뚝이 있다.

 

 

자경전 십장생 굴뚝 (보물 제810호)
자경전 뒤편에는 왕비의 침소인 교태전처럼 아름답게 화계를 꾸미지는 않았지만, 십장생과 박쥐문, 당초문을 새긴 굴뚝을 세워 볼거리를 만들었다. 많은 온돌방이 마련되어 있는 방들에서 나온 여러개의 굴뚝을 모아 하나의 큰 굴뚝을 만든 것이다.

 

 

십장생 굴뚝과 담장
전벽돌 담장의 일부를 한 단 앞으로 내밀어 생긴 벽 사이의 공간은 연기의 길이 된다.
굴뚝 벽면 중앙 큰 사각틀에 여러 모습들을 조형적으로 조각했다. 굴뚝 옆면에는 박쥐와 당초문을 넣었다.

 

 

굴뚝 벽면을 보면, 커다란 사각틀 안 제일 가운데에 해와 산, 구름을 넣었고, 좌측부터 소나무, 바위, 사슴, 학, 거북, 불로초, 대나무 등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과 국화, 연꽃, 포도, 석류 등의 식물과 열매를 조각해 놓았다.
사각틀 위에는 중앙에 나티를 새겼고, 양쪽으로 학을 넣었다. 맨 아래에는 불가사리를 넣어 굴뚝을 완성했다.

 

 

십장생도
소나무는 꿋꿋함의 표상으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선비의 인격에 비유되고, 사슴은 흑록의 검은뼈를 얻으면 불로장생한다고 여겼다. 구름은 이상향으로 선계의 구성물이라 한다. 불로장생의 명약 불로초가 여기저기에 피어있다.

 

 

십장생도 
학은 자태가 아름다워 선계의 동물로 인식되어 신선처럼 오래 산다고 여겼고, 거북은 만년을 사는 고령 동물로 여겨 장생과 길상의 상징이 되었다.
해는 영원히 빛난다는 연유로 불로의 개념이 되었고, 바위는 오랜 비바람을 이겨내고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자연의 섭리를 따른다는 의미에서 장생물이 되었다. 대나무 또한 소나무, 매화와 함께 세한삼우라 하여 강인함과 꿋꿋함의 표상이 되었다.

 

 

제일 오른쪽에는 새와 연꽃, 포도 등 식물과 열매들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것은 십장생에 들지는 않지만 새는 행복을 상징하고, 식물들은 많은 열매를 맺기 때문에 풍요와 다산으로 왕실이 번성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십장생도에 함께 넣었다.

 

 

십장생도 전체 모습
위의 3장을 연결한 십장생 굴뚝 문양 (크기 4023x1275)

 

 

십장생 굴뚝 나티와 불가사리
굴뚝의 십장생도 위에는 악귀의 침입을 막아주는 나티를 가운데 두고, 불로초를 입에 문 학을 양쪽으로 배치했다.
십장생도 아래에는 굴뚝으로 들어올지도 모르는 사악한 기운을 퇴치하며 불을 잡아먹는다는 불사의 동물인 불가사리를 좌우에 균형있게 배치했다.

 

 

십장생 굴뚝 박쥐 문양
십장생 굴뚝 양쪽 옆면에는 당초문과 함께 부귀를 의미하는 박쥐가 새겨져 있다. 앞면의 십장생 문양만 보다보면 옆면의 박쥐 문양을 잊어 버리기 십상이니 놓치지 말고 잘 찾아보자.

 

 

왕비의 후원인 아미산이 화려한 신선세계로 비유된다면 이 굴뚝은 나이 많은 여주인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한 폭의 정교한 벽화라고 할 수 있다.

 

 

북쪽담장 문자도
십장생 굴뚝이 있는 북쪽 담장 안쪽에는 성(聖), 인(人), 도(道), 리(理)로 읽히는 문자도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고, 그 사이에는 만수문, 격자문, 육각문, 오얏꽃 등을 정교하게 새겨 격조를 높이고 있다.

 

 

서쪽 담장
꽃담이 있는 서쪽 담장 안쪽에도 문자와 격자문, 육각문 들로 가득채워져 담장 하나에도 정성을 들인 흔적이 엿보인다.

 

 

남쪽 행각
자경전의 정문인 만세문이 있는 남쪽행각 안쪽은 담장이 아닌 유일하게 작은 방들로 이루어져 있다. 서쪽으로 담장과 이어지기 전까지는 방들이 있긴하지만, 이렇게 행각보다 담장의 비중이 더 큰걸 알 수 있는데, 궁녀로 북적대는 것보다는 조용하게 여생을 지내라는 마음 씀씀이라고 한다. 행각 중간에 나가는 곳이 바로 만세문이다.

 

 

만세문 (萬歲門 Manseamun)
자경전 남쪽 행각에 위치한 문으로 여자들이 여닫기 쉽게 가벼운 당판문으로 만들어져 여인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만세'란 만년을 뜻하며 긴 시간을 의미하는 만큼 이곳에 거처하는 안주인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만세문
자경전의 문들 중 유일하게 편액이 걸려있는 문이다. 강녕전, 교태전에 비하면 정문 치고는 단촐한 2칸구조로 되어있으며, 다른 침전에는 없는 정문 계단이 놓여있다.

 

 

남쪽 행각
남쪽 행각의 동쪽에서 본 모습으로 교태전 후원으로 들어가는 문이 저멀리 보인다.

 

 

동쪽 담장
자경전 주변에는 수십개의 집과 담장, 문들이 있었으나 대부분이 없어졌다고 한다.
동쪽 담장에는 이름없는 일각문과 월문이 있으나 사용하지 않고 굳게 닫혀있다. 그래서인지 사람의 발길이 없어 관리도 잘 안되고 있는것 같아 보인다.

 

 

소주방지
자경전 남쪽에서 동궁 북쪽까지 소주방 복원공사를 위한 가림막이 쳐져있다. 동궁편에서 소개한 글을 잠깐 살펴보면...

동궁의 북쪽에는 수라간인 내.외 소주방이 있었다. 궁궐에는 왕실가족이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옷을 만들고 음식을 요리하는 궁녀들이 있었는데, 음식을 만드는 곳이 바로 수라간이다. 수라간에는 찬 음식을 만드는 생과방, 더운 음식을 만들고 잔치 때 떡과 음식을 만드는 소주방이 있었다. 방문 당시 경복궁에서는 2014년까지 옛 소주방 권역 복원공사를 시행중이었다.

 

 

공사 가림막에 붙어있던 사진들...

 

한희순상궁 (조선왕실의 마지막 주방상궁)

 

 

왕세자탄강진하도십첩병 (순종 탄생축하행사, 보물 제1443호)

 

 

임인진연도병 (고종황제 51세 생일기념잔치)

 

 

궁궐내 장독대 (동궐도)

 

 

다음은 교태전 서쪽에 위치한 흠경각과 함원전, 그리고 수정전을 둘러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