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7 흠경각, 함원전, 수정전

2012. 3. 23. 21:29+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문화유산 답사기

[조선 왕조 제일의 궁궐을 만나다]
경복궁 #7 흠경각과 함원전, 수정전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 종로

Photographed by BayZer™

2012.03.03

 

 

 

경복궁 현황도

 

 

 

함원전 (含元殿 Hamwonjeon)

 

흠경각과 함원전은 농본사회를 운영하는 왕의 역할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건물들로 왕실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

 

 

함형문 (咸亨門 Hamhyeongmun)
아미산과 함원전 뒤뜰 사이에 담장을 두고 작은 일각문을 만들었다. 이곳을 통과하면 함원전의 뒤뜰로 이어진다.
함원전 영역에서 본 모습으로 안쪽에 아미산 소나무와 건순각이 보인다.

 

 

함원전 뒤뜰
이곳은 함원전의 북쪽으로 아미산과 비슷하게 뒤뜰에 화계를 조성하고 굴뚝을 만들었다. 화계에는 앵두나무와 모란이 심어져있고, 통로는 뒷골목마냥 좁은편이다.

 

 

함원전 굴뚝
작은 화단을 쌓고 그 위에 3기의 굴뚝을 세웠는데 아미산의 굴뚝은 6각형인 반면 이 굴뚝은 4각형으로 만들어졌다. 굴뚝의 몸체에는 별다른 문양없이 주황색 전벽돌을 쌓았고 기와지붕을 얹은후 그 위에는 작은 굴뚝 3개를 모았다.

 

 

굴뚝과 선장문
굴뚝 사이로는 선장문이 있어 아미산 남서쪽과 연결되나 지금은 굳게 닫혀 있다.

 

 

우측의 함원전과 좌측 부속건물의 처마가 겹쳐질만큼 좁은 구역에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함원전 기단 아래 구멍 3개는 함원전의 아궁이고, 저 앞에 보이는 전각은 흠경각이다. 

 

 

함원전 (含元殿 Hamwonjeon)
함원전은 교태전 서쪽에 위치한 전각으로, 세종 때 불상을 모셔두고 불교의식과 행사가 자주 열렸던 곳이다.
함원이라는 이름은 원기를 간직한다는 의미로, 주로 이곳은 왕비와 여인들이 찾았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교태전과 재성문인 협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문종이 승하한 뒤 단종이 이곳에서 왕이 되기전에 머무르기도 했다. 흠경각 뒤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규모는 흠경각과 비슷하다.

 

 

함원전 현판
지금의 현판은 1888년(고종25년)에 예조참판과 대사헌 등을 지낸 문신인 이명재가 쓴 것으로, 창덕궁 화재시 뜯겨나기기 전의 것을 수리해 달았다.

 

 

함원전 아궁이

 

 

함원전의 샘
함원전 뒤뜰 서행각과 이어지는 담의 북쪽끝에 있는 동그란 모양의 샘이다. 샘 주둥이의 동그란 돌은 이어붙인게 아니라 하나의 돌로 되어있으며 강녕전의 어정보다도 원형에 가깝다는 견해다. 그 주위에는 납작하고 평평한 돌을 깔고 물이 흐르도록 동그랗게 길을 만들어 놓은것으로보아 아마도 빨래터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재성문 (財成門 Jaeseongmun)
여인들의 왕래가 잦았던 함원전인 만큼 왕비의 편의를 위해 만든 협문으로, 재성문을 통해 교태전 영역으로 들어갈수 있다.

 

 

 

흠경각 (欽敬閣 Heumgyeonggak)

 

흠경각 (欽敬閣 Heumgyeonggak)
교태전의 서쪽, 강녕전의 서북쪽에 위치한 흠경각은 장영실이 세종의 명을 받아 건립한 천문관측소였다.
절기와 시간을 알리는 앙부일구와 자동 천문 물시계로 알려진 옥루기륜을 설치했던 곳이며,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혼천의, 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하는 혼상 등 간의를 만들어 흠경각 일원에 설치하였다.

 

 

흠경각 현판
흠경은 흠모하고 공경한다는 뜻이지만 하늘을 공경하여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준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름은 세종이 지은 것으로 현판은 1995년에 설치하였으며 서예가 동강 조수호가 쓰고 오옥진이 새겼다.

 

 

흠경각과 어정
흠경각이 강녕전과 인접해 있는 이유도 농업 위주의 전통사회에서 시간과 천체의 운행에 맞추어 정치를 하기 위해 천체기구들을 왕실 가까이에 두려했기 때문이다. 경회루 남쪽에 있었던 보루각, 궁성 서북쪽의 간의대 등도 흠경각과 관련된다.

 

 

자선당 (資善堂 Jaseondang)
흠경각 서쪽 행각에 위치한 부속건물로, 자선당은 '북궐도형'이나 '일성록'에 보면 자선당이 아닌 자안당 (資安堂)으로 나온다.
동궁 영역에 있는 세자가 거처하던 자선당의 이름을 이곳에 쓸리는 없을텐데... 아마도 현판을 잘못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수정전 (修政殿 Sujeongjeon)

 

왕실과 밀접하게 관련있는 관청을 궁궐 안에 설치해 궐내각사라 불렀다. 비서실인 승정원, 서적 편찬을 맡았던 홍문관, 의료기관인 내의원 등 크고 작은 관청들이 근정전 서쪽에 있었다. 수정전은 일상 집무공간으로 사용하다가 1894년 갑오개혁 때 내각 본부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수정전 (修政殿 Sujeongjeon)
1867년 중건된 수정전은 근정전 서쪽에 위치한다. 1894년 고종은 의정부를 궁궐 안에 두고 내각이라 부르는 조치를 취하였으며, 이때 의정부가 자리잡은 곳이 바로 수정전이다. 그전까지 내각으로 불리던 규장각은 그 명칭을 다시는 쓰지 못하게 되었다.

 

 

세종 때 한글 창제의 무대가 된 집현전은 지금의 수정전 자리에 있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면서 고종때에 경복궁 중건시 새로 지은 전각이 수정전이다.
다른 전각들과는 다르다고 느껴지는게 바로 사방이 탁 트인채 주변으로 행각이 없다는거다. 일제강점기때 주위의 행각이 모두 없어지고 지금은 전각만 덩그러니 남은채 수정전을 지켜주는 것은 한그루의 소나무 밖에 없는 듯 하다.

 

 

수정전 현판
'수정'은 정사를 잘 수행함을 의미하며, 현판의 글씨는 중건 당시 도승지까지 오른 조선 후기의 문신인 조석원이 썼다.

 

 

수정전 옆면
수정전은 앞면 10칸, 옆면 4칸으로 경복궁 전각 중 칸수가 가장 많은 40칸의 전각이다. 지붕의 합각은 특이하게 널판지로 되어 있고, 기단 좌우에는 난방용 아궁이가 하나씩 있으며 그 우측으로 돌출된 2개의 석단이 있다.

 

 

복도 흔적과 굴뚝
뒤쪽과 이어지는 기단 부분에 위로 돌출된 두 개의 석단은 경복궁이 훼손될 때 철거한 복도의 흔적이라고 한다. 수정전 좌측에도 똑같은게 돌출되어 있다. 뒷면에는 양쪽으로 계단을 놓았고 그 가운데 굴뚝 2기가 있다.

 

 

수정전 월대
수정전은 왕의 출입이 빈번하다보니 관청으로는 드물게 정면에 월대를 두었다. 퇴물림으로 5벌의 기단을 쌓았는데 근정전 말고는 이보다 높은 기단을 쌓은 전각이 없다. 앞면에 셋, 옆면에는 좌우 하나씩의 계단을 배치했다. 중앙계단과 동쪽계단 사이틈에 노둣돌이라고 하는 사각의 돌이 놓여있다.

 

 

노둣돌
노둣돌은 말에서 내려오기 쉽게 하기위한 용도로 쓰였으며, 입궐하는 관리들을 위한 노둣돌은 대게 궐밖에 두었다고 한다. 현재 창덕궁 낙선재, 연경당에서도 노둣돌을 확인할 수 있다.

 

 

자격루 세웠던곳 표지석
수정전 전면 3개의 계단 중 왼쪽 계단의 서측에 놓여있는 표지석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장영실 선생이 자격루를 세웠던 곳
조선 세종(1418~1450) 때의 과학자 장영실 선생이 자격루 (자동시보장치가 붙은 궁중표준 물시계)를 발명하여 설치했던 보루각의 옛터이다.
장영실 선생은 세계 최초의 측우기(1441)를 비롯하여 간의 (천체관측기), 혼천의 (천문시계), 규표 (태양고도측정기) 등을 만들어 조선시대 과학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향상시킨 위대한 과학자이다.

 

 

의복체험
수정전에서는 유일하게 의복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얼굴만 내밀고 기념사진을 찍는 포토존도 좋지만 이왕이면 조선시대 의복도 직접 입어보고 체험해보는건 어떨까 싶다.

 

 

영추문 (迎秋門 Yeongchumun)
수정전에서 경복궁의 서쪽 담장으로 가면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이 있다. ‘가을을 맞이한다’라는 뜻으로 건춘문과 대비되는 개념의 이름이다. 이 문은 주로 문무백관이 출입하던 곳으로 특히 서쪽 궐내각사에 근무하던 신하들이 많이 이용하였다.

 

 

영추문
영추문은 궁 관람후 나갈수 있는 출구의 기능은 있으나, 매표소가 없어 이 문을 이용해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다. 잠깐 양해를 구하면 나가서 현판을 찍고 다시 들어올 수는 있다.

 

 

영추문 천장
현재의 문은 1975년에 복원된 것으로 천장에는 호랑이가 그려져 있다.

 

 

수정전 야경

 

 

 

 

 

 

수정전 야간공연

 

 

 

 

 

 

 

 

 

 

 

 

사극에서나 보던 궁중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아름다운 공연은 이색 볼거리로 꼽을만 하다.